구아바
키란 데사이 지음, 원재길 옮김 / 이레 / 2001년 3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

 

며칠 전 '온스타일'이라는 케이블 티브이를 시청하게 되었다. 패션과 관련된 프로그램이었고, 이승연이 게스트와 함께 나와서 요즘 계절에 유행이 될만한 아이템을 쇼핑하는 프로였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이승연이 게스트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 전세계적으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기로 유명한 곳이 바로  한국의 동대문 시장과 인도의 실리콘 벨리라지요? 멋스러운 아이템을 언제든 구입할 수 있는 동대문 시장에서 그럼 몇 가지 소품을 구입해 보도록 할까요?"


인도의 실리콘 벨리가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인도가 정보 기술및 소프트 웨어 산업에서 높은 수준을 차지 하고 있다는 사실, 인도정부가 발벗고 나서서 인터넷 보급율을 올리기 위해 저가 PC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언젠가 스쳐 지나가듯 봤던  기억이 나면서 역동적으로 산업화, 근대화 되고 있는 인도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와 같이 정부 주도로 산업화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 인도는 여전히 카스트의 신분제도에 묶여 계층에 따라 다른 부와 교육, 일자리가 주어지고 있는 불평등, 반민주적인 나라라는 사실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마치 낡은 기둥과 서까래를 고려하지 않고 건물 층수를 무리하게 올리는 건물처럼 불안요소가 도처에서 풍기는 인도.


인도의 한 젊은이가 '구아바'라는 소설을 써서 세계의 이목을 받았다고 한다. 27세에 최연소 '부커상' 수상이라는 타이틀 또한 '구아바'라는 이 소설을 읽기도 전에 뭔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도대체 이 '구아바'라는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하고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소설은 '풍자소설'이다.  구아바 속 인물들의 정신없는 소동들을 읽고 있노라면 "낄낄낄~"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무 생각 없는 듯  살다가 어느 날 구아바 나무 위로 쪼르르 올라간  주인공 삼파드의 행동뿐 아니라 그런 아들을 돈벌이로 생각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짜는 그의 아버지, 먹는 것에 삘~이 꼿혀서 온갖 동, 식물로 요리를 하고 그것을 아들에게 먹이려는 어머니, '누군가가 날 따라 다닌다.' 라고 말하며 허영에 들떠 꽃단장 한 채 시내 나들이를 하던 삼파드의 여동생이 아이스크림 장수에게 사랑을 느끼며 그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 심지어 '시네마 몽키'라고 불리는 원숭이들이 술주정에다 인간들이랑 한판 싸움을 하는 것은 또 어떻구.. 각각의 인물들이 그만큼 생동감이 넘치고  재미가 있다. 거기다, 그 인물들이 나타내는 은유를 파악하게 되면 젊은 작가의 재기에 무릎을 딱 하고 치게 될 것이다. ' 어... 이 소설이 이런 뜻이었어? ' 라고 생각하면서.


1. 내이름은 '삼파드'


삼파드라는 이름은 '행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랜 가뭄 속에서 고통받던 마을에 삼파드가 태어나는 날, 비와 함께 하늘에서 떨어진 구호식량은 그의 앞날에 항상 행운이 있을 것 같은 확신을 주는 듯 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경쟁하는 것이 싫어 언제나 성적은 바닥이었고 직장이었던 우체국에서는 빠릿빠릿 하지 못해 직장에서도 대우를 받지 못하고 결국 직장 상사의 딸 결혼식에서 결혼식 준비나 얌전하게 돕지 못하고 혼자의 생각에 취해 옷을 사람들 앞에서 홀딱 벗으며 자유를 느끼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이름이 주는 아이러니에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왜 삼파드는 이다지도 현재에 적응하지 못한 채 어리버리하고 멍청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다가 '삼파드'라는 이름대신에 '인도'라는 이름을 넣어 보았다. 영국의 오랜 식민지 생활로 피폐해졌던 인도가 독립을 할 때만 해도 인도인들은 뭐든 다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독립과 함께 후발 후진국의 위치에서 세계 질서속에 참여하게 된 인도는 세상과 경쟁하기에는 사회적, 인적, 자본적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였을 뿐 아니라  꿈을 꾸는 듯한 독특한 사색과 내적 충만을 위해 사는 인도인들의 삶의 방식은 서구의 이성적이고 합리성, 결과를 중요시 하는 잣대로 본다면  뒤떨어져 보이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꼭 서구의 기준에 맞추어서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래야만 행복해지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작가는 가졌던 것 같다. 인도의 은유로 삼파드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면 필연적으로 그를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의 틀 밖으로 나가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삼파드는 남들의 말에 순순히 따르며 사는 것이 자신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구아바 나무위의 삶에서 찾고자 한다.

 

삼파드의 위치 이동... 이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그가 예언처럼 이야기 하는 것들도 이웃들의 편지에서 훔쳐본 내용이었으며 그의 지식도 별다를 것이 없이 삶 속에서 접했던 것을 말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세상은 그를 ‘나무 위의 도사’라고 부르며 그를 추종하고 아버지는 삼파드에게 부드럽게 땅으로 돌아오라고 유혹하는 한편 그를 이용해서 돈을 벌어들이고 어머니는 억누르고 있던 요리의 욕구를 마음껏 발휘하며 요리를 했다. 또한 그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여성상에 머무르고 있던 누이조차 사랑하는 남자에게 열정을 표현하며 애정공세를 보이는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어 간다. 즉, 그가 억지로 세상의 틀을 따라가던 위치에서 벗어나자 마자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었다.

 

작가는 인도의 행운은 인도인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그와 같은 믿음은 실제로 삼파드처럼 자신의 소신대로 행동으로 옮겼을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하고 싶었음에 분명하다.

 

2. 삼파드와 '시네마 몽키'

소설속에서 '시네마 몽키'는 꽤나 중요한 비중으로 나온다. 그저 어슬렁 거리며 시내 극장 주변에서 관람객들이 던져주는 땅콩이나 음식물 부스러기를  먹던 그들이 삼파드가 구아바 나무로 자리를 이동하고 난 후 삼파드 주변에 모여들어 삼파드의 추종자 뿐 아니라 삼파드의 가족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모습은 당황스럽기 까지 하다.

 

인도가 자립의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버지로 대변되는 자본과 산업화는 인도의 고위 관리들과 연합을 해서 삼파드 주변에서 말썽만 피워대는 그들을 구아바 숲 주변에서 쫓아내려는 계획을 꾸민다. 그럼 '시네마 몽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구아바 나무 위로 올라간 삼파드에게 공물로 많은 음식과 술이 몰려드는 것을 보고 '시네마 몽키들'은 삼파드 주변으로 몰려드는데, 삼파드는 그들을 쫓지 않고 함께 생활을 하면서 '몽키 도사'라는 명성을 떨치게 된다. 삼파드로 비유되는 인도가  인도의 자연과의 공존을 꿈꾸고 그 특유의 자연과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를 통해 명성을 얻는다 하여도  개발 도상국 특유의 개발 의지와 인도의 삶 전체를 뒷받침 해주는 자연과의 공존 사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소설 속에서는 몽키들을 진압하려는 군인들에게 쫓겨 몽키들은 다른 숲으로 이동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과정 중에서 삼파드는 결코 내려오려고 하지 않던 구아바 나무에서 떨어져 어머니가 삼파드를 살찌우기 위해 특별 요리를 준비하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솥단지'에 빠져 죽게 된다.

 

이쯤되면 작가가 현 인도의 산업화와 개발화를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비판적이고 비관적인지 짐작이 되지 않는가? '행운'이라는 이름의 삼파드를 자연탄압의 상황에서, 그를 살찌우기 위해 끓여대던 솥단지에 빠뜨려 죽임으로서 인도의 행운은 자연을 고려하지 않고 산업화가 진행될 때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를 강력하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3. 그 외 에피소드..

작가는 인도의 결혼문화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여성 작가인만큼 인도의 불합리한 중매문화에 대해서 할말이 많았나 보다. 삼파드의 영향을 받아 열정적으로 '헝그리 홉'에게 두 사람만의 사랑을 갈구하는 삼파드의 여동생은 아이스크림 장수인 '헝그리 홉'에게 사랑의 도피여행을 제안한다. 그러나, '헝그리 홉'은 도피여행 전날, 가족들이 적극적으로 그에게 전통적인 미녀와 선을 주선하게 된다. 전통적인 미녀와의 중매를 통한 안정된 결혼과 삼파드 여동생과의 사랑의 도피 중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이 희극적으로 그려지는데 전통적인 결혼관과 연애를 통한 결혼이 충돌하고 있는 인도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에필로그...

 

풍자소설, 희극의 묘미는 아마도 한참 웃은 다음 그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송곳에'정곡을 찔렸군!'하는 생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구아바 나무에 올라간 삼파드처럼 세계질서라 불리는 숨막히는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꿈꾸는 나라에서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기를 바라는 젊은 인도 작가의 입심을 즐겁게 읽으며 재기발랄하고 젊은 인도의 모습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인도와는 다른 입장에 있지만 우리또한 같은 고민을 짊어지고 있지 않은가?

남들이 만들어낸 틀 속에서 숨막혀 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며 세상의 질서를 새로 만들어 가길  꿈을 꾸는 자들에게 노래 한 곡을 선사하고자 한다.

 

"얘들아~ 애들아~ 오늘도 밤샘이다. 딱 걸렸다. 코피가 대박이네~ . "

 (-_-)/~(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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