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이래 학생들이 반세기 이상 입어오던 검은 교복을 하루아침에 벗어버리고 사복착용으로 바꿔 입었을 때 대부분 학부모들은 이로 인해 청소년범죄가 늘어나지 않을까 우려했었다.’(동아일보, 1984. 3. 30) 지나간 신문을 뒤적여보면, 1980년 교복 ․ 두발 자유화 이후 언론은 학부모들을 내세워 부정적 여론을 주도한다. 심지어 ‘교복자유화이후 디스코클럽을 찾는 고교생들이 부쩍 늘었다. 이같은 현상 때문에 청소년들의 행태가 점점 향락 지향적으로 흐른다는 지적이 많다.’(동아일보, 1984. 12. 15)는 기사를 보면 웃음이 난다. 교복 자유와 이전에는 학생들이 디스코클럽에 교복을 입고 갔을까. 교복이 자유화되고는 디스코클럽에 간 학생은 그 전보다 얼마나 늘었을까. 교복을 벗으니 향략 지향적으로 흐른다는 지적을 한 주체는 누구였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28년 전 신문기사가 전혀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프레임에서 얼마나 벗어났을까.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한 보호와 선도를 명목으로 청소년의 권리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권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자. 그 적용대상과 범위는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사회적으로 합의하지 못한 상태에서 청소년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의 성장과정과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왜냐하면 추억은 모든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나 <써니>는 40~50대 중년들에게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파는 향수 마케팅에 불과하다. 요즘 청소년들에게는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다. 부모 세대가 겪었던 학창시절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일 뿐이다.
대한민국의 보편적 인권은 ‘국가인권위회’가 설립된 21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소년의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아직도 학교 담장을 넘어서지 못한채 학교 붕괴, 교권 침해 문제와 맞물려 인과 관계를 찾지 못하고 사회적 논란만 거듭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인권’의 기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미국 독립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토머스 페인은 1791년에 발표한 『인권』에서 ‘인간의 평등권이라는 찬란하고 거룩한 권리는(그 기원이 인간의 창조주에게 있으므로) 생존한 개개인에게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뒤를 잇는 사람들의 세대와도 관련된다. 각 세대는 그 앞서간 세대와 평등한 권리를 가지며, 그와 같은 원칙에서 각 개인은 그 동시대인과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는 말을 통해 인권의 기원은 자연권임을 주장하고 있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인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는 어떤 이유로도 어떤 제도로도 제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최현의 『인권』은 ‘시민권’ 차원에서 인권이란 무엇인지 살피고 있다. 프랑스 국회가 1789년 헌법 서문에서 채택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 처음 등장하는 ‘인권’이라는 용어는 ‘시민권’과 동시에 탄생한다. 자연법에서 출발한 인권의 기원을 살펴보고 고대의 시민권의 변화를 알아본 후 근대 인권 사상과 시민권 제도의 발전 과정을 살펴본다. 주로 서양을 중심으로 홉스와 로크, 루소 사상의 핵심을 살펴본 후에 근대 국민 국가인 프랑스의 사례를 점검한다. 현대사회의 인권은 여성과 다문화 등 보다 보편적이고 폭넓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 책에서도 지구 공동체 차원에서 인권의 개념과 범위를 확장 시키자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시대의 변화와 사회 변동에 따라 인권의 개념도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 책을 통해 인권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특히 청소년 인권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김민아의 『인권은 대학가서 누리라고요?』는 ‘나이가 어려도, 공부를 못해도, 대학을 가지 않아도 나는 지금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부제처럼 청소년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학생만 청소년이 아니다. 비학생도 청소년이다.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서 청소년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중요하다. 아동권리협약, 유네스코 교육차별금지협약 등 본문 관련 조항들을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 배치해서 독자들에게 주장의 근거와 타당성을 제공하고 있어 설득력을 더하고 있는 책이다. 권리는 유예될 수 없으며 ‘지금-여기’가 중요하다. 청소년의 인권도 마찬가지도 가고 싶은 학교,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 책임은 성인들의 몫이다.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청소년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학교,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동적 주체로 자녀를 인정하는 부모가 먼저 청소년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육성철은 『세상을 향해 어퍼컷』을 통해 서른여덟 명의 인권지킴이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이는 실제 생활에서 부딪치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해낸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이 책에는 청소년과 장애인, 비정규직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강제 이발을 진정한 이태준, 비학생 청소년 차별을 진정한 박호언, 비정규직 청소부 김순자, 양심적 병역 거부를 진정한 양지운, 색각 차별을 진정한 김민수 씨 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고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면 인권은 남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라도 생각은 조금씩 다르다.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무언가를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개인의 이익과 주관적인 취향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서 비롯된다. ‘인권 감수성’은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의 처지를 이해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외경심을 높이는 감성.”이라는 국가인권위 김창국 초대위원장의 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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