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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본 자본주의 사회의 시간 싸움
류동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2월
평점 :
“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머물지 아니하므로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 1』, 문학과지성사, 1993)는 회의론자의 추론은 타당한가. 경제학의 눈으로 바라본 ‘시간’은 물리적, 심리적 양상을 모두 반영한다. 일하며 느끼는 시간과 사생활의 시간은 층위가 다르다.
류동민의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착각하지 말자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가 아니라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이다.)를 본 순간 류비세프의 일생을 들여다본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가 떠올랐다. 1916년부터 1972년까지 매일 자신의 삶을 시간으로 기록한 사람의 이야기다. 시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는 측면에서 선구적인 자기 계발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는 ‘의무적인 일을 맡지 않는다, 시간에 쫓기는 일은 맡지 않는다, 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한다, 열 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잔다, 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 한다’는 원칙대로 살았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근대인이다.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가 아니라 시간을 해부한 사나이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돈이다. 프라이스리스의 시간인 여가도 기회비용으로 환산해 본 사람은 자본주의 경제학을 온몸으로 체감한 사람이다. 경제학자 류동민은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로 처음 만났다.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저자의 인문학적 감수성에 충분히 공감했던 책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름기를 빼듯, 핵심을 전달하고 요약된 정보를 제공하듯 서술하고 있어 아쉽다. 200여페이지라는 얄팍한 책으로 태어나 부담을 줄이고 각 챕터의 분량이 짧아 읽기 편해졌다는 느낌보다 천천히 편안하게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재미가 사라졌다. 물론 ‘시간’이라는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는 장점을 위해서였겠지만.
처음 류동민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마르크스 전공자였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나 보수진영에서는 여전히 이름만 들어도 딸꾹질을 한다. 김수행 교수로 대표되는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스스로 결정한다. 가정환경, 학교교육, 전공과 직업, 주변 분위기에 따라 사고와 행동이 결정되지만 읽고 쓰고 경험하면서 인간은 변한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차이웨이의 말대로 ‘머리를 써야 할 때 감정을 쓰지 마라’ 합리적 사고 논리적 판단은 생각보다 부단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과학의 실험과 결과에 대한 해석조차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지만, 사회과학적 사고의 토대는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우선이다. 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고 분노의 언어를 토해내면 속은 후련하지만 변화 가능성은 적다.
자본주의적 삶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추적하라는 류동민의 프롤로그가 사실 이 책을 읽는 목적에 해당한다. 주체와 객체, 개별과 보편, 화폐와 물신, 시간의 밀도, 시간의 착취, 잉여의 시간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학적 관점으로 해석 가능한 ‘시간’의 온도와 밀도를 면밀히 살펴보는 동안 나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분초 단위를 쪼개고 쪼개던 순간들이 떠올랐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프라이스리스의 시간이지만 잉여의 시간과 허구의 시간으로 살기로 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루는 스물 네 시간이다. 그리고 언젠가 죽는다는 절대 평등.
이 조건 안에서 우리는 남은 시간을 쓴다. 같은 시간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모든 사람이 노동의 자율성과 노동의 최소화를 고민한다. 저자의 말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화된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돈(화폐)이다. 돈은 그 자체로 시간이면서 일(노동)이 된다. 일을 한다는 것은 시간을 쓰는 것이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돈을 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 이전에 시간은 자본주의적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카스테라 한 조각을 뭉쳐 입에 넣어도 물리적인 양은 동일하지만 맛은 다르다. 이 책은 얇고 짧지만 그 깊이와 내용에 목이 막힐 수 있으니 유의 할 것. 사족이지만 표지디자인과 본문 디자인은 막힌 목을 풀어줄만한 우유가 아니라 건조기 바람처럼 서걱인다. 편안하고 부드럽게 포장한다고 내용이 달라지진 않지만 캐릭터, 일러스트, 요약정리 어떤 방법이든 조금 더 쉽고 간명한 요소가 곁들여졌다면 싶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같은 메뉴라도 음식점의 분위기와 주변에 놓인 요리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내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 있어 착취당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상태는 착취해 줄 상대를 찾지 못할 때뿐이다.”라는 조앤 로빈슨의 시니컬한 지적이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착취 대상을 물색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더 큰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 곳곳에 인용한 책들에 군침만 삼켰다. 곁에 두고 참고 문헌을 참고할 만하다.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처럼 경제학을 인문학이나 생활에 적용시킨 책을 더 잘 쓸 수 있는 저자의 다음 책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