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21세기 - 1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시대가 변해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것이 고전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하게 하는 책들이 많다. 노자가 바로 그렇다.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는 22세기든 23세기든 변하지 않는 세상과 삶에 대한 가치를 전해준다. 김용옥의 해설한 노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노자’가 전하는 인간 삶의 정수 때문이다. 고리타분한 고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책장을 넘겨보자.

고전을 해석하는 방식은 풀이하는 사람의 개인적 성향이나 삶에 대한 가치관, 세상을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도올 김용옥은 노자를 풀이하기 전에 ‘동아시아 문명의 새로운 축’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풀어내고 있다. 도올은 책의 서두에서 21세기의 3대 과제를 ‘인간과 자연환경, 종교와 종교, 지식과 삶’의 화해로 제시했다. 이렇게 거시적인 안목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전망하는 태도는 ‘노자’를 풀이하고 이해하는 기준이 된다. 수백년, 수천년 전의 사상을 오늘에 되새기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텔레비전의 폐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부정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텔레비전을 영향과 효용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김용옥은 변명처럼 EBS를 통해 ‘노자’를 강의하게된 배경을 길게 설명하고 있다. 단순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수만은 없겠지만 김용옥의 텔레비전을 통한 강의는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고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식의 대중화는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대한 방법으로 선택된 텔레비전이라는 매체가 과연 그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어쨌든 가장 파급력 높은 매체를 통한 김용옥의 강의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노자와 21세기 1>에서는 ‘노자도덕경’이라는 책에 대한 해설이 길게 붙어 있다. 1973년에 발견된 백서帛書와 1993년에 출토된 죽간竹簡의 연구 성과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노자’에 관한 한 가장 최근의 정확한 해설을 곁들였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오랜 시절을 거치면서 가감된 부분들에 대한 설명은 노자의 근본 정신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구절 풀이에 대한 이견과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여러 가지 논의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심각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다만 ‘노자’가 전해주는 의미들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여전히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도올 특유의 어법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 책은 쉽고 즐거운 마음으로 ‘노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1권에서는 우선 6장까지를 해설하고 있다.

道可道, 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名可名, 非常名.         이름을 이름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無名, 天地之始;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의 처음이라 하고,
有名, 萬物之母.         이름이 있는 것을 만물의 어미라 한다.


노자의 핵심 사상인 ‘도道’를 제 1 장에서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의 일상적 사유를 뒤집는 역설이다. 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라고 하면 우리는 그것을 뭐라 불러야 하나? 아니 부르지 말고 규정짓지 말고 한정하지 말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일상과 유리된 모든 가치는 의미없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道’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면 이 책에 한발 다가서게 된다. 워낙 긴 시간동안 많은 사람에게 소개됐고 알려진 책이지만 진지하게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은 즐겁기만 하다.

天地不仁,                       천지는 인자하지 않다.
以萬物爲芻狗;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다룰 뿐이다.
聖人不仁,                       성인은 인자하지 않다.
以百姓爲芻狗.                 백성을 풀강아지처럼 다룰 뿐이다.
天地之間, 其猶橐蘥乎!      하늘과 땅 사이는 꼭 풀무와도 같다.
虛而不屈, 動而愈出.         속은 텅 비었는데 찌부러지지 아니하고 움직일수록 더욱 더 내뿜는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이 많으면 자주 궁해지네. 그 속에 지키느니만 같지 못하네.


제 5 장의 내용이 맘에 와 닿아 옮겨 적어본다. 천지는 인자하지 않고, 성인도 인자하지 않다는 말에 공감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본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짝사랑은 부질없다. 세상 만물이 있는 그대로의 성질을 드러낼 뿐 자연은 결코 인간을 배려하지 않는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시혜적인 입장과 시선으로 동등하지 않은 관점으로 백성을 바라보는 성인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인상적인 부분들은 특별한 해설이 없어도, 아니 해설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 사유의 단초를 공한다. 노자와의 즐거운 대화가 계속 될 수 있도록 천천히 음미해야겠다.


06110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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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6-11-0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용옥 씨를 보고 있으면, '도는 도고, 삶은 삶이다'라는 생각도 들어요.(헤헤)

sceptic 2006-11-04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올이 도인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