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1~22 세트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
이이화 지음 / 한길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 데 있다. - 아놀드 토인비

   역사를 대할 때마다 내가 되새기는 가장 인상깊은 금언이다. 금붕어와 같은 인간의 기억력 탓일까? 왜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서 현실적 문제들의 실마리들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일까?

   개인의 저작으로는 가장 방대한 저술로 볼 수 있는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는 모두 22권으로 완결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이이화의 이력은 제도권에서 벗어나 있다. 제도적 규범에 따른 학문적 성취나 어느 교수 계보에 의한 편협성을 찾아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 서술에 있어 보다 자유롭고 새로운 관점을 지녔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권 『우리 민족은 어떻게 형성되었나』에서는 인류의 진화와 우리 민족과 뿌리를 찾아 단군과 함께 민족의 근본에 대한 탐구로 흥미롭게 시작된다. 2, 3권에서는 삼국과 가야, 4권에서는 『남국 신라와 북국 발해』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우리 나라 최초의 통일국가를 신라로 보아 ‘통일신라’라는 개념을 거부하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결국 당의 힘을 빌어 신라가 통일했으나 북쪽에는 고구려의 후예들이 발해를 세워 완전한 통일로 볼 수 없다는 논리이다. 우리는 현재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를 통해 삼국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그러나 역사는 승리자의 편에서 서술되는 것이 당연하며 사관(史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보다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역사 해석이 다양하게 인정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5~8권은 고려시대의 역사이다. 『고려사』로 대표되는 역사를 바탕으로 지방 호족 세력이었던 태조 왕건으로부터 무신정권의 생성과정과 그 폐해를 당시 집권세력들간의 세력 다툼과 왕권의 측면에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몽골의 침략과 30년간의 끈질긴 항쟁을 통해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목은 차라리 처절했다. 생존의 몸부림과 백성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936년에 건국된 고려는 1392년 이성계의 역성혁명으로 457년만에 멸망하고 만다.

   9~12권까지를 조선 전기로 나누어 조일전쟁(1592년 임진왜란), 조청전쟁(1637년 병자호란)이 마무리되는 1645년까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유럽의 중세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세종이라는 걸출한 임금을 배출하여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게 되지만 일본과 7년간의 전쟁을 통해 뒤이어 뿌리깊은 숭명반청(崇明反靑)사상 때문에 실리외교를 멀리하여 청나라의 침입을 받고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게 된다. 물론 이때에도 집권세력인 양반들의 좁은 국가관과 맹목적인 모화사상(慕華思想)이라는 명분 때문에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간다.
 

  13~15권은 조선후기, 곧 17세기 중기(1646년)부터 18세기 후기(1800년)까지 150년 가량의 시대사를 담고 있다. 조선후기의 걸출한 두 임금 영조와 정조가 그나마 위안을 준다. 문화군주로 일컬어지는 정조의 개혁에 대한 열망과 문화적 역량에 힘입어 유럽의 르네상스에 견줄만한 변화가 있을 법하다가 죽음과 더불어 또다시 문벌정치에 휘말리게 된다.

   16~19권에서는 조선의 종말과 초기 한국의 근대사를 담았다. 뿌리깊은 당쟁과 파벌싸움, 지역간의 알력은 그 연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고 그 후유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까지도 몸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 역동하는 세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조선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다가 결국 힘의 논리에 의해 강제적으로 문을 열게 된다. 이 무렵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근대화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빠른 속도로 세계 열강들의 발달된 물질 문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 러시아, 미국등은 제국주의 식민지 정책을 앞세워 중국의 문호를 개방하고 뒤이어 한국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변화를 모색하지만 바닥난 국가의 재정과 낙후된 군사력 등 세계 무대에 주체적으로 안착하지 못하고 일본과 청의 간섭과 위협아래 예정된 수순처럼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만다.

   20~21권에서는 한국사의 식민지 시대를 다루고 있다. 3·1운동을 위시하여 끊임없는 국내외의 독립운동과 친일세력의 모순속에서 결국 우리는 35년간 치욕스런 식민지 시대를 보내게 된다.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에 힘입어 제 2차 대전의 패전국으로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대한민국은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도 러시아와 미국의 분할점령이라는 또다른 식민지의 형태로 말이다. 정리하면,


1권~4권 : 선사시대부터 남국신라?북국 발해까
5권~8권 : 고려시대13권~15권 : 조선 후
16권~19권 : 조선 근대
20권~22권 : 식민지


로 나눠 총 6차분 22권으로 완간되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집권자와 승리한 자의 이야기들을 단순하게 서술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았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せ?서술은 물론이고 소홀히 다루기 쉽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당시 민중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애쓴 흔적이 역력하며 놀이와 풍속 등 당시의 생활의 한 단면들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많아 실감나는 역사로 읽혀졌다. 학교 교육을 통해 굳어져버린 역사적 용어와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이해없이 단순 암기 내지 반복 숙달했던 역사적 사실들을 되짚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일관된 관점으로 우리 역사 전체를 조망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특히 식민지 시기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벌어졌던 민족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은 물론 무정부주의를 표방했던 인사들의 행적까지도 가감없이 비중있게 다루어 새로운 시각으로 독립운동의 일면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내년이면 해방 60주년을 맞는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난지 겨우 60년. 이 짧은 격동의 세월속에서 대한민국은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몸살을 앓으며 한걸음씩 힘겹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왔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며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21세기 벽두에서 우리가 고민해야할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똑바로 읽어 왔으며 그 교훈들을 차치하고라도 과거를 정리하고 반성하는 모습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부끄럽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소위 모든 위정자들은 시대의 소명을 부르짖기 앞서 현재의 우리들 모습을 과거를 통해 돌아보고 이땅의 민중들의 모습을 직시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부터의 개혁과 투쟁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며 소외된 이웃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나눔의 실천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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