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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트 - 전4권 - 개정판 ㅣ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아르놀트 하우저 지음, 반성완 외 옮김 / 창비 / 199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지은이는 문학사와 철학 및 미술사를 전공한 헝가리 출생 문학사가이며 예술사회학자이다. 최초의 독일어판이 1953년에 출판되었으며, 66년에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다가 81년에 완역되었다. 이후 1999년에 개정판이 출판되었다. 백낙청, 염무웅, 반성완의 번역작업이 고된일이었을듯 싶으나 나로서는 좋은 책을 만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대체 문학과 예술은 따로 분리될 수 있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 가치를 떠나 분리될 수 있을 정도의 부피와 무게를 가지고 역사 속에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인가가 더욱 의문스러웠다. 제목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문학과 예술은 선사시대 인류의 발생과 더불어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인류가 발생되어 끊임없는 종족보존 욕구와 생존의 몸부림 속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예술은 그렇게 처절한 삶의 투쟁속에서 꽃피기 시작했다고 본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가족에게 1차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학교나 사회를 통해 2차적 욕구들을 채워나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학과 예술을 접하고 스스로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또다른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혀 나가게 된다.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겪게되는 일반적인 패턴이다. 나만 그랬나? 하지만 과거에 문학과 예술의 경계는 당연히 모호했으며 예술가의 존재 또한 현재와는 달랐다. 시대와 관점, 그리고 학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예술과 생활은 그렇게 혼재되어 있었으며 생활과 밀접한 관계속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의 효용성과 실용성을 따지기 이전에 말이다. 발터 벤야민(W. Benjamin)이 옳게 지적했듯이 예술작품을 낳는 데는 두가지 상이한 동기가 있다. 즉 단순히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과 남에게 감상될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은 언제부터 남에게 감상될 목적으로 존재했을까?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선사시대, 고대 오리엔트의 도시문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중세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2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끄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4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영화의 시대
이 책은 이렇게 4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역사시대의 순서에 따라 후대에 이름 붙혀진 각 사조의 명칭에 따라 서술되어 있다. 지은이는 서양사와 서양 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분석으로 독자들을 압도한다. 그것이 처음부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교양서로 시작한 책이 잠시라도 집중력을 떨어뜨리거나 ‘빡빡한’ 서술에서 한눈을 팔게되면 책의 첫머리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 또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지은이는 명쾌하고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문학과 예술이 사회적 관점에서 어떤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지 혹은 역으로 사회 현상들이 문학과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차분히 분석해 내고 있다. 결국 문학도 예술도 사회적 인간에게 특정 영역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당연한 것이다. 씨줄과 날줄처럼 정교하게 얽혀있는 사회, 역사적 환경과 문학과 예술의 관계를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지닌 저자가 명쾌하고 치말한 논리로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소 딱딱하지만 너무나 큰 즐거움이었다. 결국 내가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안목은 어떤 문학과 예술이든 1930년 신비평주의자들의 주장대로 작품 내적 의미에만 충실하며 얻을 수 있는 즐거움 또한 당연하겠지만, 사회적 맥락 속에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역사적 관점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예술의 흐름들을 짚어가며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내다 볼 수 있는 눈을 조금 뜰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