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문학과지성 시인선 276
진은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봄, 놀라서 뒷걸음질친다
맨발로 푸른 뱀의 머리를 밟다

슬픔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또 비가 내린다

자본주의
형형색색의 어둠 혹은
바다 밑으로 뚫린 백만 킬로의 컴컴한 터널
- 여길 어떻게 혼자 걸어서 지나가?

문학
길을 잃고 흉가에서 잠들 때
멀리서 백열전구처럼 반짝이는 개구리 울음

시인의 독백
“어둠 속에 이 소리마저 없다면”
부러진 피리로 벽을 탕탕 치면서

혁명
눈 감을 때만 보이는 별들의 회오리
가로등 밑에서 투명하게 보이는 잎맥의 길

시, 일부러 뜯어본 주소 불명의 아름다운 편지
너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 진은영, 문학과지성 시인선 276<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중에서 -

“언제부터인가 내 삶이 엉터리라는 것뿐만 아니라, 너의 삶이 엉터리라는 것도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너라도 이 경계를 넘어가주었으면. 그래서 적어도 도달해야 할 무엇이 있다는, 혹은 누군가 거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그 어떤 존재 증명과 같은 것이 이루어지길……사람들은 왜 내겐 들을 수 있는 귀만을 허락했냐고 신에게 한바탕 퍼붓는 살리에르의 한탄과 비애를 전하지만, 사실 얼마나 배부른 소린가? 모차르트와 동시대인이라는 거, 그거 축복 아닐까?” 하고 시비거는 시인의 후기를 읽으며 별 것도 아닌 것들에 감사하고 객관적 시각에선 하찮은 일들에 목숨거는 우리들, 아니 나의 모습에 또한번 고개를 튼다. 어쨌든 나는 이렇게 살아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힘이 남아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에 불은 나무토막, 그 위로 비가 내”릴 때마다 창밖을 내다보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살지 않을 주소 불명의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