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스터를 먹는 시간
방현석 지음 / 창비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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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존재하는 형식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어떤 경우에도 문학은 삶,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동시에, 문학은 지금 이 순간을 넘어서는 시간의 신기루 위에서 홀로 나부끼는 깃발이다.”

작가의 말에서 방현석은 자신의 문학관을 간략하게 피력하고 있다. 40대 중반의 작가가 등단한지 15년이 지나 우리들의 존재형식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는 조심성을 내비치는 것은 지나친 겸손이라는 생각과 함께 영원한 숙제라는 생각도 든다. 소설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네 편의 중단편을 묶어놓았다. <존재의 형식>, <랍스터를 먹는 시간>, <겨우살이>, <겨울미포만>이 그것이다. 존재의 형식과 랍스터를 먹는 시간은 베트남을 무대로 하고 있으며 겨우살이는 전교조 해직교사였던 주인공의 시선을 빌었고 겨울미포만은 노동운동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미국의 부시정권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에 바쁘지만 국제사회의 통제를 벗어난지 오래라는 느낌이다.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뒤를 캐고 다닐만큼 미국은 모든 반대세력 제거에 혈안이 되어 있다. 현재 이라크의 상황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의 군인들은 이라크 재건과 평화유지를 위해 파병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겨우 베트남 종전 30년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인간의 기억력은 금붕어 수준일 뿐이다. 지나간 과거와 역사에서 교훈과 반성을 얻지 못하는 미국의 더러운 야망을 손가락질 할 뿐. 미국의 부름을 받고 대한민국 군인은 이라크 침략 전쟁에 동참하게 된 현실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네 편의 소설 모두 후일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존재의 형식>은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에서 활약했던 영화감독의 이야기와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의 전력을 지닌 주인공의 이야기가 병치되어 있다. 어느 시대를 이야기할 때 그것을 객관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물며 소설 속에서 그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서로가 가진 상처의 깊이와 아픔이 주는 현재적 의미를 되돌아 볼 뿐이다. <랍스터를 먹는 시간>에서 그것은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따이한(한국군)의 만행 때문에 몰살당한 한 마을을 찾아가는 주인공은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영웅적 전사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 마을의 또다른 생존자 노인을 통해 아무 상관없는 베트남에서 미국이 쥐여준 총을 잡고 싸우다 죽어간 따이한이 더 불쌍하다는 회상을 들려준다. 시간이 모든 상처를 치유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베트남전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침략전쟁은 미래의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 고통받는 이라크 국민들의 상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겨우살이>는 전교조 해직 교사였던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 사회를 본다. 학교의 규정 때문에 정식으로 임명받지 못한 가장 반장스러운 반장이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주인공의 둘째누나는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있으마 가해자는 4만원짜리 교통범칙금 딱지 한 장을 떼고 돌아가 찾아오지 않는다. <겨울 미포만>은 80년대 혁명적 노동운동의 현장 변화와 조직원들의 이반문제를 다루고 있다. 미포조선소 사건이후 와해되는 노동 운동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노동귀족’이라는 이름의 고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속물적 자본주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사회의 구석구석 어디 아프지 않은 곳이 있으랴. 문학의 본질과 역할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도 오히려 이런 한권 한권의 소설들이 우리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그 해답을 던져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방현석씨의 다음 소설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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