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충청도 시골 외가댁에 며칠씩 놀러가는 일이 큰 행사였다. 그저 평범한 시골이었지만 논과 밭이 있었고, 여름이면 물장난질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개울이 있었다. 뒷동산은 당연히 거기 있었다. 평범한 시골에서 큰 재미가 있는건 아니었지만 도시의 아이들이 느끼기에 충분히 새롭고 신선한 환경이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밤의 화장실이다. 집 뒤켠에서 멀리 떨어진, 그것도 언덕이랄것도 없지만 조금 낮은 지대로 내려가 있었던 화장실은 상상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헛간 한쪽에 엉성한 나무조각을 막아 놓은 재래식 화장실의 냄새와 공포 분위기는 상상 이상이다. 혼자 간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작은 볼일은 물론 마루의 요강을 이용했었다. 7, 80년대 시골 풍경이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건 시골의 밤하늘이다. 가로등 하나 없는 캄캄한 시골 마당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경외롭다. 쏟아질듯 반짝이는 그 별빛들은 15년쯤 후에 강원도 비무장지대 매복지에서 바라볼 때까지는 마지막이었으니까. 주변에 불빛이 없고 먼지가 없는 맑은 하늘은 별을 관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마루의 평상에 누워 했던 그때 생각들이다. 저 별빛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하늘에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을까? 하늘밖에는 우주가 있다는데 우주의 끝은 있을까? 우주의 그 끝 밖에는 뭐가 있을까? 총명한 영재였다면 훌륭한 천체 물리학자가 되었겠지만 학교에서 암기식으로 주입되던 지구과학, 생물, 화학, 물리는 나를 완전히 환장하게 만들었었다.

아이들의, 아니 일반인들의 그런 사소한 호기심들을 재밌게(?) 풀어줄 수 있는 책이 있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다. 과학에 문외한이라고 밝힌 저자는 지구의 역사 크기, 우주에 관한 이론들, 인류의 기원과 생명의 신비로 부터 현재와 미래의 인간의 모습에 대한 반성까지 아우르고 있다.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론에 치중하기보다는 과학자들의 에피소드와 과학적 이론의 탄생과정과 정확성에 대해 알기 쉽게 풀어주고 있다. 학교에서도 이런식으로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하고 풀어줄 수 있는 방식으로 과학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랬다면 나도 과학을 재밌게 공부할 수 있었을텐데라고 핑게를 대본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주와 지구의 역사에서 보면 점으로도 표시될 수 없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과 호기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정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겠지만 과학적 관점에서 현재 나의 모습을 고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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