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세계 (합본)
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 현암사 / 199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춘기 시절 가장 지독한 고민과 그리움이 있었을까? 문예반 활동을 하던 무렵 학교 축제에 그녀가 찾아왔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동아리에 가입하고 이 맘때 여학교와 시 합평회를 한 차례 가졌었다. 그해 여름 심상사에서 주최한 청소년 문학캠프에서 그녀를 두 번째 만났었다. 시화전에 출품한 판넬위에 노란 들국화가 붙어 있었다. 9월이었다. 열일곱 소년의 가슴에 봄이 왔다. 대학 3학년때 그녀는 시집을 갔다. 사춘기하면 떠오르는 얼굴이다.

  누구나 그러했듯이 아마 그 무렵부터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세상은 어떤 곳일까’…… 그 시절 책방에서 뒤적이던 ‘쇼펜하우어 인생론’이나 ‘니체 인생론’은 아직도 책꽂이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힘겨웠던(?) 사춘기를 가끔씩 떠올려준다. 그때 이 책 ‘소피의 세계’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하며 내내 책을 읽었다.

  생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막막함을 경험해 본 사람은 허무주의자가 되거나 실존주의자가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우리는 철저한 감각적 현실적 존재로 생을 맞이하게 된다. 보편적 삶의 모습이고 그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요슈타인 가아더는 교사답다. 가르쳐 본 사람은 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분명한 차이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거나 관심이 없을 수 있는 철학의 문제들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기 위한 그의 고민과 노력이 감동적이다. 마치 공부하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동기를 유발하고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 있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려주려는 것처럼 말이다. 현학적 취미나 지식의 허영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존재의 모습을 이런 방식으로 보여주는 책은 없었다. 인문학의 기본 소양을 文․史․哲이라고 하지만 두 장르가 결합되는 경우는 대개 문학과 역사다. 철학과 문학의 만남은 작가의 사상에 반영된 주제의식의 발현이거나 작품 내적 구조의 치밀한 구성일때가 많다. 이렇게 직접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 소설의 형식을 빌린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 시도가 가상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훌륭하게 성공하고 있다. 소설속에 두 주인공 소피와 힐데의 역할 인식은 다름아닌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심연으로 내려가 나를 바라보는 행위와 그 의미 찾기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의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고3 3월 모의고사에 플라톤의 이데아론에 관한 지문이 출제되었다. 학생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그에 따른 문제들은 오답율이 50%를 넘었고 깊은 좌절과 한숨의 공감이 넓게 퍼져 나갔다. 윤리 시간을 통해 암기한 단편적 철학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물론 이 책을 읽은 학생이 있었다면 정답을 맞췄을 거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청소년기에 읽고 고민해야할 문제들과 경험해야할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다.

  중앙 공원의 분수가 하늘 높이 솟아 오르고 있다. 하늘은 흐리고 일요일의 오후는 한가로울 것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세상은 무엇으로부터 생겨 났을까? 수수께끼같은 질문들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진지하게 혹은 즐겁게 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200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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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1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thanks to~

sceptic 2007-11-22 09: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도 즐겁게 읽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