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술 라루스 서양미술사 7
니콜 튀펠리 지음, 김동윤.손주경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시대와 함께해야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야 한다’는 모더니티에 대한 디드로의 선언으로 19세기 미술은 문을 연다. 1848년 제2공화국 선언부터 세잔이 사망하는 시기까지의 미술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있는 이 책은 급격히 다양해지고 팽창하는 유파들을 이전시대처럼 명명 지을 수 없고 <19세기 미술>이라고 묶었다.

  사실주의, 인상주의, 상장주의, 후기 인상주의, 아르누보, 아르데코 등이 혼재했던 시기였다는 것은 그만큼 예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종교와 권력에 복무하던, 권위와 신화에 종속된 예술이 아니라 화가의 시선과 자연의 빛이 주는 느낌과 역할이 중요해지기 시작한다.

  현대 예술을 창조하기로 마음먹은 최초의 화가 쿠르베는 ‘올랭피아’, ‘아틀리에’ 등을 통해 현대성을 말한다. 특히 ‘오르낭의 장례식’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작품속에 등장하는 현실속의 소시민, 노동자들의 모습을 통해 사실주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는 정장 차림의 남자들 옆에 나체의 여성을 그림으로서 부르주아 전원풍 목가의 불순함을 그려내고 있어 충격을 주었다.

  이 시기는 니세포르 니엡스에 의해 최초로 사진이 발명됐던 시기로 미술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친다. 드가나 로트렉은 사진을 통해 크로키나 동작의 목록의 역할 뿐만 아니라 시선의 포착과 인간의 인식 작용 사이에 놓인 간격을 가늠했다. 또한 사진은 일본판화와 같이 프레임, 앵글, 원경, 전경 등 새로운 공간구도를 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시기의 일본 미술은 인물과 인물의 배치법인 화면 공간구성법과 배색법은 모네, 드가, 반 고흐, 고갱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풍경화 장르가 전성기를 이루었던 19세기 후반은 프랑스에서 혁신적인 작업이 이루어졌다. 프랑스의 자크 루소, 샤토브리앙, 생피에르, 영국의 조지프 터너, 존 컨스터블 등의 풍경화가 인상적이었다.

  ‘인상, 떠오르는 태양’으로 유명한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면 “풍경이 자아내는 감각의 측면에서 인상주의적이다”라고 한 카스타냐리의 말로 표현된다. 피사로, 세잔, 기요맹, 바지유, 모네, 르누아르 등의 인상주의 화가그룹은 본격적인 현대성을 발현하기 시작한다.

  빈센트 반 고흐의 ‘까마귀 떼 나는 밀밭’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죽음을 예견한듯 보인다. ‘해바라기’의 작가로, 생 레미 프로방스 정신병동에 감금된 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는 동시대와 20세기 화가들에게 복잡한 영향을 끼쳤다. 야수파에게 생생한 터치를 인상주의에는 색채의 상징적 역할을 전수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난과 고통스런 질병 속에서 그가 빚어낸 예술혼이 그의 그림을 빛나게 하고 있다. 십수년 전에 읽었던 그의 평전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중적인 그림일 수 없으나 경외감을 가지고 그의 그림을 대하게 되는 이유는 단지 그의 생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그림이 보여주는 강렬한 색감과 붓의 터치는 미술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더할 수 없는 여운을 주었었다.

  폴 세잔은 현대 예술, 특히 큐비즘과 야수파의 문을 연 프랑스 회화의 거장이다. 야수파는 색채를, 피카소와 브라크의 큐비즘은 구성을 중시했다. ‘생트 빅투아르 산’과 ‘사과와 오렌지’ 등을 통해 색채와 형태의 엄격한 균형에 바탕한 그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큐비즘과 야수파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된다.

  이 시기의 또 하나의 특징인 상징주의 화가들은 사물의 보이는 모습을 넘어서 숨겨진 현실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윌리엄 헌트, 로세티, 존스, 드샤반 등이 여기에 속한다. ‘천국의 문’과 까미유 클로델과의 연인으로 너무나 유명한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들은 사랑과 삶에 대한 염세주의적 개념은 보들레의 ‘악의꽃’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 폴 고갱의 <백마>는 색채 사실주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움을 선택한 그림으로 평가 받는다. 타이티에 말년을 보낸 고갱의 그림에서 보여주는 원시적 상징성은 후세에도 많은 논란이 되었다.

  건축에서 보여주는 절충주의와 예술의 총체로서 ‘아르누보’라 명명되는 세기말 징후는 당연해 보인다. ‘예술과 사회를 엮어줄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예술을 창조하려는 생각’이 아르누보를 단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영국의 ‘아츠 앤 크래프트’, 프랑스의 ‘성찰적 미학’ 그리고 개인 주택으로까지 발달되는 과정들이 이 시기 만물과 만인을 위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스페인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소개가 간략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건축가로 그의 건축 화보집을 보다가 스페인으로 뛰어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소개가 미흡해서 아쉽다.

  이렇게 폴 고의 죽음과 더불어 19세기는 막을 내리고 20세기 시작되었다. 고갱은 원시적 예술표현의 문을 열어줌으로써 큐비즘 형성에 근본적인 역할을 하게될 아프리카 가면의 ‘발견’에 화가들이 민감하도록 만들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그의 그림은 미술의 영역이 존재론적 측면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20세기 미술의 성찰을 예견하고 있다.



200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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