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봉감별곡 : 달빛아래 맺은 약속 변치 않아라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나라말) 5
권순긍 지음 / 나라말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의 영원한 주제일 수밖에 없는 남녀 간의 사랑은 진부하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으며 늘 새로운 형태로 전달되고 해석되어 감동을 전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점으로 ‘단순’하거나 ‘뻔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없는 우리 고전소설의 아름다움은 당대의 가장 소중한 진실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춘향전이나 운영전보다 훨씬 애절한 사랑노래가 <채봉감별곡>이 아닌가 싶다. 소극적, 수동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운명과 사랑을 지키려 노력했던 춘향이나운영이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모순된 당대 현실과 제도를 온몸으로 거부한 채봉이야말로 우리 고전문학사의 가장 현대적 개념에 근접한 여인상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달빛 아래 장필성과 김채봉은 한 눈에 반하게 되고 서로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긴 시간동안 시련을 극복하고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당시의 매관매직에 의한 뿌리 깊은 사회적 부패 현상과 기생제도에 대한 인권문제 등은 조선 후기 사회에 나타난 민중들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고난을 겪은 사랑일수록 더 값지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채봉이가 보여주는 눈물겨운 투쟁(?)과 적극적인 운명 개척의 정신이다. 소설의 전면에서 허판서의 첩으로 살게 될 운명을 거부하고 아버지를 구해내며 자신의 사랑까지 지켜나가려는 채봉의 적극성은 봉건시대 한국적 여인상이 지닌 미덕 아닌 미덕을 거부한다.

  평양감사의 업무 보조로 일하던 어느날 가을 달빛에 젖어 써내려간 ‘추풍감별곡’이라는 가사의 이름에서 ‘채봉감별곡’이라는 소설 제목이 연유하였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설속의 장편 가사 ‘추풍 감별곡’은 당시 민중들의 애절한 사랑노래를 읽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눈앞에 온갖 것이 모두 다 시름이라
  바람에 지는 낙엽 풀 속에 우는 짐승
  무심히 듣게 되면 관계할 바 없건마는
  이별의 한 간절하니 소리소리 수심이라
  굽이굽이 맺힌 시름 어찌하면 풀쳐낼고
  아해야 술 부어라 행여나 시름 풀까
  잔대로 가득 부어 취토록 먹은 후에
  석양산길로 을밀대 올라가니
  풍경은 예와 달라 만물이 쓸쓸하다 - ‘추풍감별곡’ 중에서


  이 시리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책 중간중간에 끼어 있는 정보쌈지이다. ‘조선시대의 사랑’, ‘기방풍경’, ‘19세기 매관매직의 실태’, ‘고전소설 속의 여인들’, ‘평행기행’ 등 쉽고 재미있는 정보 페이지를 삽입해서 간단하지만 알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 속 배경지식들을 덤으로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전국국어교사 모임 ‘나라말’ 출판사에서 고전읽기 다섯 번째 시리즈로 출간된 <달빛 아래 맺은 약속 변치 않아라>를 받아 들고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은 김은정씨를 비롯해서 전편을 번역했던 조현설, 신동흔 선생님등과 마지막 출판위원회를 열었던 지난 여름이 생각났다. 대학로에서 늦도록 술을 마시고 광화문에서 심야좌석을 탔던 기억이 새롭다. <함께 여는 국어교육> 여름호가 도착했으니 진짜 여름이 시작된듯 싶다. 반가운 선생님들의 글들과 고민들이 반갑다.

  우리 고전에 대한 이해와 깊은 애정은 한국문학에 대한 뿌리와 바탕을 이룬다. 정확한 해석에 의한 판본이 없어 쉽고 재미있는 우리 고전이 고전(苦戰)을 면치 못하거나 과소 평가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정확하고 재밌는 시리즈를 기대하며 숨어 있는 고전읽기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싶다.



200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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