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그밖의 것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오늘의책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나는 시간을 무익하지 않게 쓸 수 있을 방법이 있을 때는 절대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구절로 기억되는 부분이다. 물론 그만큼 공감했다는 이야기다. 러셀은 이렇게 명쾌하고 시원스럽게 자신의 생각들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유머와 재치 넘치는 표현과 신랄한 풍자가 읽는 재미를 더하여 에세이가 어떤 형식의 글이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듯싶어 시원스러웠다.

  그것은 러셀 특유의 박학과 관점 때문이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학문적 깊이에서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일관된 관점을 유지하며 어렵지 않게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주며 부당한 억압이 없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읽어내는 것이 러셀을 바로 읽는 방법일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에 관해 설명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20세기 최고 지성으로 손꼽히는 그의 에세이들을 죽기 전에 출판을 준비하던 미발표 에세이들이라고 한다. 이 책은 1931년부터 1935년 사이의 글들을 모았다.

  흔히 비판적 지성이라 명명되는 촘스키와 자주 비교되는 러셀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보수와 안정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통념을 깨고 진보적 성향을 견지했던 흔치 않은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촘스키와 비교되는 또 다른 면은 글쓰기 방식이다. 복문이 주를 이루는 만연체가 ch촘스키의 특징이라면 러셀은 간결체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래서 논리전개가 빠르고 논리 구조가 탄탄해서 꼼꼼히 읽지 않으면 행간에 숨어있는 사색의 깊이와 위트를 놓치기 쉽다.

  그의 글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시간을 초월한 인간 세상에 대한 통찰력 때문인지도 모른다. ‘경험의 교훈’에서 “젊은이들은 상상과 논리적 추론에 영향을 받고 노인들은 경험의 안내에 따라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다.”라고 말하거나, ‘비겁의 이점’이란 글에서 “기업이나 학교, 정신병원 따위의 윗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열에 아홉이, 독자적 판단력을 가진 입바른 사람보다는 나긋나긋한 알랑쇠를 선호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지금 변한게 있을까? 계속되는 지적이다.

  오늘날의 당신이 성공을 원한다면 과거에 하던 그대로 하면 된다. 자기 생각대로 과감하게 굴지 말고, 소심하게 살피며 교묘하게 환심을 사는 것 말이다. …… 당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실현하고자 애쓰지 말고 백만장자들의 지원을 받는 단체가 정해놓은 목표를 추구하고자 노력하라. 사적인 우정에서는 될 수 있는 한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가려서 사귀되, 혹시 실패할 경우에는 영향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을 사귀어라. 이렇게만 하면 당신은 공동체의 최고인물들 전원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게 될 것이다. - ‘비겁의 이점’

  달라지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불행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미래에도 같은 이야기가 여전히 통용될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 세상의 보편적 정서에 공감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오늘의 세상은 두 가지의 불행으로 고생하고 있다: 자신이 살 수 없는 재화를 소망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팔 수 없는 재화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 ‘세상이 미쳐가고 있는가?’

  그가 살던 시대에도 교육은 가장 큰 관심거리였고 대안 교육에 관심을 가졌던 그의 입장에서 당연히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교사든 교사가 아니든 우리는 누구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자신의 입장에서 교육하는 교육자다. 아이들의 부모는 학교 선생보다 훨씬 중요한 세상의 가장 훌륭한 교사다. 러셀의 이 말은,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부모와 교사가 기억할만하다.

  아동에게서 남다른 사고력의 징표를 읽어내는 법과, 너무 남다른 것이 교사에게 불러일으키는 짜증을 자제하는 법. 이 두 가지를 배우는 과정이 모든 교사들의 훈련과정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 ‘협력에 관하여’

획일화된 학교 교육과 남의 아이들과 내 아이를 비교해서 평균적(?)이거나 그 이상의 아이로 키우고 싶은 - 오로지 성적면에서만 - 기성 세대에게 울리는 경종으로 들린다. 러셀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사상가다.



200506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