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컴 X vs. 마틴 루터 킹 - 다르지만 같은 길 1
제임스 H. 콘 지음, 정철수 옮김 / 갑인공방(갑인미디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겨우 몇 십년전에 일어난 야만적인 미국의 일상사에 대한 고찰이다. 이 책은 두 인물을 통해 과연 미국의 전통과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하며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종과 종교, 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교묘한 형태로 여전히 존재하는 이 시대는 과연 그들이 살았던 시대보다 나아졌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맬컴 X와 마틴 루터 킹의 삶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남부 중류층에서 태어나 박사 학위를 받고 흑인 교회 목사로 흑인 민권 운동에 투신한 마틴은 비폭력 통합 주의를 표방한다. 반면 빈민가의 상징으로 백인에게 강간당한 외조모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붉은 피부색을 지닌 맬컴은 철저한 폭력적 분리주의를 내세운다. 미국의 자유와 민주적 가치를 믿었던 마틴과 백인들의 차별에 폭력으로 저항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던 맬컴의 가치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보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마틴의 통합주의적 입장과는 반대로,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흑인 대중”들의 관점에서 미국을 바라본 맬컴 엑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절대 다수를 위해서 악몽이라는 이미지에 호소하며 미국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묘사했다. (본문 75페이지)

  같은 시기에 미국의 아프리카계 흑인들을 위해 민권 운동을 펼쳤으나 전혀 다른 방법과 이념을 가졌던 두 사람은 미국이라는 가치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표적 개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만을 위한 자유와 민주주의는 백인 우월주의로 나타났으며 이에 대한 극복은 두 사람에게 운명처럼 다가왔고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바탕으로 상호 보완적 관계를 이룬다. 단 한번 만났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암살로 생을 마감한다.

  마틴의 ‘통합주의’ 철학의 핵심은 “사람들은 종종 서로 미워한다. 서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두려워한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잘 모른다.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통할 수 없다. 서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본문 72페이지)”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된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백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마틴은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에 비해 맬컴은 북부 빈민가 흑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남북전쟁 후 1870년, 링컨의 수정 헌법 15조에 의해 흑인에게 투표법이 주어졌으나 ‘짐 크로(Jim crow)’법에 의해 ‘분리는 하되 평등은 하다’는 흑인 분리(차별) 주의가 흑인의 90%가 살고 있던 남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정착된다. 20세기 초부터 벌어진 흑인 민권 운동은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법적 투쟁부터 시작해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등으로 촉발된 실생활의 차별적 행위들에 대한 폭넓은 범위의 투쟁이었다. 두 사람은 이 시기의 미국의 참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마틴의 신학이 사랑과 용서 그리고 흑인과 백인이 사랑 넘치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했다면, 맬컴의 신학은 엄격한 정의와 단호한 처벌 그리고 신이 백인종 전체를 절멸시킬 것이며 그리하여 평화와 선의의 세상을 모든 백인 가운데에 세워주리라는 희망을 강조했다. (본문 266페이지)”

  일라이저 무하마드의 이슬람 종교에 의지해 대중앞에 나선 맬컴은 결국 그와의 결별 이후 마틴의 주장과 흑인들간의 통합과 연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 암살 당한다. 맬컴 암살 이후 마틴은 미국의 베트남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미국의 절대 가치로 믿었던 자유와 인권을 바탕으로 한 인류애의 가치에 회의를 갖는다. 미국은 “평화를 얘기하면서 전쟁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유색인종과 여성, 어린이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하는 모습은 베트남에서 여실히 목격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됐던 인종주의 정책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인류 사회를 초토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 388페이지)” 베트남전을 통해 마틴은 “베트남에서 적군 병사 한 명을 죽이는 데 50만 달러를 쓰면서 자국 내의 가난한 시민에게는 단돈 50달러만 쓰는 나라”를 인식하고 미국은 자신의 도덕적 모순에 의해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미국의 이러한 이율 배반적인 모습은 걸프전과 최근의 이라크 침공등을 통해 아직도 변하지 않는 일관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교언영색하는 미국의 참모습이다.

  “어떤 입장에서 흑인 문제를 바라보든, 그러한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죽음의 위협과 마주합니다. 이는 ‘비폭력적인’ 킹 박사나 소위 ‘폭력적인’ 저나 마찬가지입니다” 맬컴의 죽음 이후 비로소 마틴은 자신의 아메리칸 드림에서 급진적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으며, 맬컴이 꾼 악몽의 공포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본문 351페이지)

  이러한 마틴의 변화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 맬컴과 마틴처럼 혁명적인 예언가들은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대개 그들이 끊임없이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던 그 힘에 의해 살해당한다. 맬컴 액스는 그가 사랑했고 자기혐오에서 해방시키고자 노력했던 흑인 집단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마틴 킹은 그가 사랑했고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백인 집단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미국은 그때와 많이 다른가? 한반도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되어버린 미국의 가치와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두 민권 운동가의 삶은 시대를 넘어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불평등한 가치를 극복하기 위한 거울이 될 수 있겠다. 늘 그러하듯이 이념이 아닌 순수한 동기와 가치에서 비롯된 헌신적 노력과 행동들이 작은 변화를 만들며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다는 믿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길 바란다.



200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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