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살림지식총서 76
홍성민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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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학년도 대입제도 변경에 따른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한 두번 겪는 일도 아니어서 이제는 냉소만 흘린다. 정치권과 교육부, 서울대를 비롯한 대학들의 태도는 국민 대다수의 희망과 정서는 고려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듯 보인다. 물론 정서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되겠지만, 교육 문제를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관성있게 추진하는 것이 그리 힘든가. 정치 논리와 대학들의 안이한 기득권 싸움은 혐오스럽다. 냉소와 비판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없지만 사실 제도권 교육의 환경 변화를 공평한 경쟁의 장으로 바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른다. 부르디외의 이론과 실천은 이런 한국적 현실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살림 지식 총서 76권 홍성민의 <피에르 부르디외와 한국사회>는 이론과 현실의 비교정치학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의 학문적 성과와 사상이 우리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적용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지 비교적 차분하고 논리적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프랑스 사람들조차의 그의 불어를 읽어내기 힘들다는 저자의 말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저작과 논문들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들만을 골라 소개한 책이다. 그것은 아비투스, 상징적 폭력, 장이론으로 요약되어 있다.

  부르디외의 학문과 사상은 프랑스 사회의 제도적 모순과 권력지배에 대한 저항정신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프랑스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보편성을 가치를 지닌다. 모든 이론과 사상은 학문과 이성의 발달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나 현실의 적용 문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부르디외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부르주아 출신의 부르디외가 프랑스 사회에서 느꼈던 모순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유효하며 마르크스의 계급과 베버의 계층의 변증법적 지향점들을 정확히 제안하고 있는 탁월함을 찾아볼 수 있다.

  “학문의 임무는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을 들추어내고,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투쟁의 무기와 같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점이다. (본문 11페이지)”는 말이 지식인의 참모습을 대변한다. 인간의 행동은 엄격한 합리성과 계산을 근거로 행해지기보다는 일정한 기억과 습관 그리고 사회적 전통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지금 현재 우리들 삶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겠다. 우리가 지닌 사상과 계급의식이 현실 정치와 사회에 어떤 모습으로 반영되는지 아픈 성찰의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개인의 상징 자본의 차이가 취향의 편차를 낳는다고 말한다. 즉 경제자본 뿐만 아니라 문화 자본의 중요성을 일깨워 무의식적 선택과 개인적 취향을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상징적 자본의 합법적 독점체로 볼 수 있는 근거를 부르디외는 학교 제도를 통해 설명한다. 교사들의 성향과 교육 방법은 그들의 선발과정들을 통해 학생들을 지도하고 평가하는 또하나의 상징적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에서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적 위계를 규정하는 신분적 질서는 학력이나 가정의 배경으로부터 유래하며, 이것은 나아가 경제적 잉여의 왜곡된 배분으로 이어진다. (본문 42페이지)”

  대입 제도의 논술 문제에 대한 적확한 답이 여기 있다. 서울대의 사회 경제적 헤게모니는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며 그것은 불공정한 평가 방식으로 문제가 확대된다. 서울대를 비롯한 각 대학의 논술 문제를 보면 무슨 말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제도권의 정상적인 학교 교과 교육과정을 통해 해결하기 힘든 방식의 평가는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대학들의 단순무식한 논리와는 달리 문화 경제 자본의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일종의 상징적 폭력인 것이다. 기여입학제의 문제는 수그러들지 않고 입시철마다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성민의 부르디외의 논의를 받아 우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짚는다.

  부르디외가 진단한 프랑스 사회 문제가 학교제도를 통한 신분적 위계질서의 재생산이었다면, 필자가 진단하는 한국사회의 교육 문제는 이러한 계급적 질서의 재생산 이외에 서구의 문화적 강압효과가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이른바 오리엔탈리즘 또는 후기 식민지성 논리의 중첩이다. (본문 55페이지) …… 부르디외의 문화 분석이나 교육분석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다. 첫째, 교육의 변화가 제도의 개선에만 머물러서는 충분하지 못하며, 학교체제를 둘러싼 기타의 사회적 장이 함께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제도의 개선은 언제나 개인적인 심성의 변화와 분리되어 사고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본문 57페이지)

  논의의 초점이 흐려지면서 교 문제가 단순히 입시제도의 변화 문제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홍성민의 말처럼 학교를 둘러싼 사회적 장과 함께 개인적 심성의 변화를 위해서는 전체 구성원들의 고민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큰 울림을 가지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이론과 사상은 ‘실천’의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탁월한 사상과 관점이라도 발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면 지적 유희나 학문의 영역으로만 남겨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그와의 만남은 소중하다. 국가와 교육제도 만큼은 개인들의 평등하고 공정한 게임을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이리라. 그 의무를 위해 신자유주의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말년의 부르디외는 실천하는 지식인었다.



200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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