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 루비박스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손가락이 저주스러울 때가 있다.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주문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이토 다카시의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은 한심스럽다. 주먹만한 글씨와 수준이하의 삽화 그리고 각 장의 제목을 한 페이지로 잡아 156페이지 분량의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재주가 용하다.

  글쓰기 전략에 관한 지침서나 활용서가 아니라 필자가 현재 운영하고 있다는 학원에서 직접 활용하고 있다는 초등학생용 교재로 복사해서 나눠줄 정도는 되겠다. 이런 식으로 많은 책을 쓰고 그 책들을 출판한다면 우리 모두 글쓰는 일에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책 내용에서 어쩌면 이런 반응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일정 분량의 글을 쓸 수 있으며 끊임없는 노력과 전략적 훈련을 통해 원고지 10장을 완성하면 아무리 긴 글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 무려 9,500원. 왠만하면 책값 얘기는 잘 안하는 편인데 입맛이 많이 쓰다.

  개인적으로 글을 잘 쓰든 못쓰든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닌 다음에야 무엇이 중요하랴. 솔직하고 진실한 이야기들을 가슴에서 풀어놓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면 행복하지 않을까싶다. 물론 경우에 따라 실용적 목적의 글쓰기가 필요한 경우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 책에서는 일반적인 글쓰기 능력을 향상 시키는 방법을 소개할 목적이었지만 남는게 없다.

  그래서 여전히 실용과 거리가 먼 기억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사색의 도구로서 글쓰기를 선택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의미없는 책이 될 듯하다. 여러권의 책을 주문하다가 끼워넣은 나의 실수였다는 말로 책의 평가를 대신한다.

  2001년부터 거의 모든 책을 예스 24에서 주문하기 시작했고,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서평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이제 겨우 8개월 남짓된다. 머리가 나빠 오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책을 읽을 때 좀 더 꼼꼼하고 내면화된 독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서평 원칙은 단순하다. A4 2매 이내 그리고 1시간 이내. 1,600자로 제한되어 서평이 너무 길다고 짤리는 겨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엔 대충 짤라고 올리고 나머지는 블로그에서 수정을 눌러 전부 올리며 된다. 사실 그렇게 긴 서평을 쓴 것도 많지 않고 쓸 능력도 안되지만. 그리고 시간의 문제다. 잘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시간이 많이 투자되고 부담이 되며 또하나의 일이 되어버릴 듯한 생각에 1시간 이내의 원칙을 고수한다. 그래서 나중에 우연히 다시 읽어보면, 오탈자도 많고 문맥의 호응이 엉망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어떤가, 이렇게 자유로운 글쓰기가 훨씬 나를 행복하게 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누굴 위해 글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인물과 사상 20 - 한국 문학의 위선과 기만>에서 강만길 교수가 지적한 문단 권력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떠오를 때가 있다. 책을 선택하기 위해 서평들을 읽다보면 그렇다. 주례서평과 비판없는 상찬들이 그렇다. 좋은 책들이 대부분이라서 그렇겠지만 정확한 평가가 아쉬울 때가 많다. 여러 계층의 독자들을 위해 나름의 평가가 더해진다면 뒤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요구하는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은 개인차가 심하다. 원고지 10장이면 2,000자다. 대략 A4 두 장 분량이다. 내가 자주 쓰는 패턴이다.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주문했을 것이다. 자기만의 개성과 취향대로 일상적인 글쓰기 속에서 문체를 만들어내고 알맹이를 채우기 위해 부단한 독서로 정신을 살찌우는 것만이 방법이라고 믿는다. 저자는 뭔가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을 것이나 책으로 묶어낸 방법이나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 실제 예문을 통한 글쓰기 방법을 제시하거나 특별한 노하우가 없는 일반론 수준에서 접근해서야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싶다.

 


200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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