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04
장석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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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시는 유효하다. 시대와 세대를 초월할 수 있는 장르는 소설이 아니라 시다. 문학의 보편성을 전제로, 공시적 측면에서 당대의 진실을 담아내는 역할이 소설에게 주어졌다면 시는 통시적 측면에서 敍情을 바탕으로 한다. 다양한 문예사조와 시대의 유행을 넘어 시의 본령을 이루는 것이 서정시다. 여전히 장석남은 서정시를 쓰고 있다.

  이제 불혹의 나이에 들어 지칠(?)법도 하건만 여전히 그는 ‘사랑’을 노래한다. 낯간지러운 설렘과 그리움이 아니라 누더기진 삶에 대한 사랑 말이다. 그래서 읽는 사람을 아프게 한다. 귀 밑을 스치는 바람이 가을을 알려주고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면 막막하기만 하다. 하늘이 푸르고 높다고해서 세상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므로.

  삽십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소설가 김연수가 그의 시를 해설하고 있는 방식 또한 흥미롭다. 전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을 중심으로 애정어린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모든 시집의 해설들이 그러하듯이 일반적인 독자들과는 거리가 먼 분석적이고 해석적인 비평이다. 오히려 그의 시선은 외면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저 장석남이 펼쳐 보이는 세상에 대한 낯선 시선들을 따라가며 편안하게, 때론 불편하게 그의 시들을 가슴에 담아보면 그만이다. 서시에 해당하는 그의 ‘얼룩에 대하여’를 두 번 읽고는 시집을 덮었다가 다음날 다시 폈다. 가슴이 먹먹했기 때문이다. 결국 독자와의 소통과 반응 속에서만 시는 제자리를 찾고 다시 살아나 언어의 의미를 살려내고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삶의 진정성을 전해준다.

 얼룩에 대하여

   못 보던 얼룩이다

   한 사람의 생은 이렇게 쏟아져 얼룩을 만드는 거다

   빙판 언덕길에 연탄을 배달하는 노인
   팽이를 치며 코를 훔쳐대는 아이의 소매에
   거룩을 느낄 때

   수줍고 수줍은 저녁 빛 한 자락씩 끌고 집으로 갈 때
   千手千眼의 노을 든 구름장들 장엄하다

   내 생을 쏟아서
   몇 푼의 돈을 모으고
   몇 다발의 사랑을 하고
   새끼와 사랑과 꿈과 죄를 두고
   적막에 스밀 때

   얼룩이 남지 않도록
   맑게
   울어 얼굴에 얼룩을 만드는 이 없도록
   맑게
   노래를 부르다 가야 하리


너무 이른 생에 대한 선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를 가늠하며 시를 읽을 수는 없다. 어느 순간이든 삶을 대하는 태도는 모두 다 다르기 때문이다. 장석남의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는 우리에게 묻지 않고 ‘미소’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시려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미소를 어디로 떠나보내고 사는지. 어디에서 미소를 찾고 있는지.


200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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