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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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리영희 선생님과의 대담 <대화>를 읽으면서 형언하기 힘든 정신과 이성의 힘에 압도당한다. 그 숙연함은 우리 시대 ‘사상의 스승’이라 불릴만한 리영희 선생님의 깨어 있는 의식과 올곧은 삶의 태도에 대한 경건함에서 비롯된다. 한 시대와 민족에게 있어 참된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전 존재로 보여주신 선생님의 삶 앞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20세기 한국 사회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이 리영희 선생님이신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주신 선생님의 발자취를 더듬은 이 책은 나에게 올해 최고의 책이 될 듯하다.

  1929년 평북 운산에서 태어나 삭주에서 성장하신 선생님은 중학교부터 서울로 유학한다. 그 무렵에 해방을 맞고 해양 대학을 졸업한 후 안동중에서 영어교사 재직하던중 6 ․ 25 전쟁이 발발한다. 군에 입대한 선생님은 최전방에서 통역장교로 3년을 근무하고 후방 군의학교에 전속되어 근무하다가 7년 만에 소령으로 전역한다. 합동 통신사에 첫 발을 내딛고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제 정세와 세계사적 흐름을 주시하며 본격적인 글쓰기와 연구를 시작한다. 60년 4 ․ 19와 61년 5 ․ 16을 겪으며 역사의 현장에서 의식을 무장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나간다. 이후, 1964년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로 옮겨 11월에 유엔총회 남북한 동시 초청안 기사로 구속 기소. 69년에 베트남 전쟁과 국군 파병에 대한 비판적 입장 때문에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제 1차 언론사 강제 해직. 군부독재 ․ 학원 탄압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으로 제 2차 언론사 강제 해직. 76년에는 제 1차 교수재임용법에 의해 교수직에서 1차 교수직 강제 해임. 77년에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8억인과의 대화> 내용의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 기소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 80년 광주교도소 만기출소. 사면과 복권 되어 해직 4년만에 교수직으로 복직되던해 5월 16일 ‘광주민주화운동’ 일어남. ‘광주소요 배후 조종자’의 한 사람으로 날조되어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지만 한양대에서 2차 로 교수직에서 다시 해직됨. 84년에 ‘기독교사회문제연구소’ 주관 ‘각급학교 교과서 반통일적 내용 시정견구회’ 지도 사건으로 다시 구곳 ․ 기소되었다가 2달만에 석방(반공법 위반혐의). 한양대학교에 해직 4년만에 2차 복직. 이후 동경대 사회과학연구소 초빙교수와 하이델베르크대학교와 독일 연방교회 사회과학연구소 공동초청 초빙교수.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주도적 참여후 이사 및 논설고문 역임. ‘한겨레신문’ 창간기념 북한 취재기자단 방북기획건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 구속 ․ 기소(당시 환갑). 추후 사면 복권. 95년 한양대학교 정년퇴직. 2000년 집필중 뇌출혈로 우측 반신마비. 이후 건강회복에 전념.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오신 선생님의 인생 이야기는 어떤 영화나 드라마 보다도 감동적이다. 딸 미정씨는 노동운동에 헌신하며 대학시절 아버지는 수정주의자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들려주는 선생님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7년간의 군복무중 17살 어린 동생의 죽음과 77년 11월 27일 반공법 위반혐의로 구속 ․ 기소되던 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선생님의 심정을 짐작해 본다. 한 인간에게 있어 사상의 자유와 사회적 책무는 어디까지인가. 참된 지식인이 한 사회에서 담당할 몫은 어디까지인가. 어렵고 힘든 질문과 대답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가족들에게 자상한 아버지, 따뜻한 남편의 역할을 포기한채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올곧은 길을 고집했던 한 인간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독재정치와 권력에 맞서 온몸으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과 리영희 선생님의 태도는 물론 차이가 있다. 외신부 기자로 본격적인 논문과 글쓰기를 시작할 무렵의 선생님은 주로 중국의 공산당 혁명과 베트남 전쟁,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 제 3세계의 해방과 독립을 목도하며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가지게 된다. 이후 한양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도 일관된 연구를 거듭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국의 자본주의적 속성과 패권주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유엔과 미국 정부의 비밀 문서를 통해 베트남 전쟁의 실체를 밝히고 전지구적 차원의 미국의 힘의 논리를 밝혀낸다. 중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시대 이후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중국의 사회주의 경제체제 포기 등 일련의 과정 속에서 북한의 입장과 태도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흐름을 짚어낼 수 있다.

  1974년 <전환시대의 논리>를 발간한 이후 우리 사회는 리영희 선생님에게 많은 것을 빚지고 있고 여전히 그러하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 관련 대학생들은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의 영향을 언급한다. “난 모든 사건에 직접으로 관계한 일은 없지만 거의 모든 사건의 ‘간접적 주범’이 됩니다.(본문 554)”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선생님의 영향력을 웅변한다. 노신을 존경하여 그의 사상과 태도 글쓰는 방법론까지 영향을 받았다는 고백은 우리 사회의 노신으로 여겨지게 한다. “‘개인은 합리적이고 또 이성적일수 있지만, 무리(집단)는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개체로서 사고하는 인간’과 무리 속에서 ‘무리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의 큰 차이에요.(본문 268)”는 말 속에 인간 리영희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무리 속에서가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입장과 태도마처 비이성적이라면 분명 통탄할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가?

  한 시대의 선각자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상적 스승으로서 한 평생을 한국의 근현대사와 함께 살아오신 선생님의 이 말이 비단 글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인들에게 경건한 자기 반성의 메시지를 전한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우상과 이성> 서문중에서)” - (본문 675)


   리뷰의 분량이 3200자로 한정되어 덧붙이는 사족.

   앞으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방향을 더듬어 볼 필요는 있겠다.

   나의 결론은 인간은 물질적 요소로 존재하는 동물이니까 자본주의적 요소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비인간화적 결과를 5할 정도의 선에서 인정하고,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성 파괴의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게마인샤프트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5할 정도 융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체제가 현실적으로 결함과 약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사회의 현 발전단계에서는 가장 낫고, 사회주의 없는 미국식 체제보다 우얼하다고 확신해요. (본문 687)

   촘스키나 피에르 부르디외, 에드워드 사이드나 사르트르를 대하면서 과연 우리 사회에 '지식인'은 있는가라는 질문과 만나게 된다. 삶과 사상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우리 삶의 태도와 이성적 판단력에 영향을 줄만큼 큰 스승으로 모시고 싶은 분을 꼽으라면 우리에겐 누가 떠오를 것인가?

   쉽사리 한 시대의 흐름을 이야기하거나 탁상공론에 빠지거나 지식과 이성이 삶의 태도와 현실의 모순으로 드러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시대를 공유하며 살아간다. 내가 배운것은 무엇이며 가르치는 무엇인가? 나의 삶은 어떠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적어도 선생님에게서 그 작은 빛과 희망을 본다. 가슴속에 꺼지지 않은 불꽃으로 살아남아 지성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책을 읽어가며 군데 군데 밑줄을 긋는 버릇이 있지만 이 몇개의 밑줄이 오히려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오해할 요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나만의 독서법이니 내 안에서 소화된 내용을 뭐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몸이 불편하여 자서전 형식의 책을 위해 대담을 맡아 성실하고 적절한 대화를 이끌어 낸 이 책의 또 하나의 주인공 임헌영 선생님의 역할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책을 추천하거나 권하는 일을 잘 하지 못하지만 이 책만큼은 모든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200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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