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과 매혹
레이첼 에드워즈, 키스 리더 지음, 이경현 옮김 / 이제이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랑슬랭은 친구들과 브리지 게임을 하고 아내와 딸과 함께 사위의 집으로 저녁식사를 하러가기 위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현관문은 굳게 잠긴 채 미친듯이 문을 두드리고 벨을 눌러도 기척이 없다. 더욱이 하녀들이 있는 다락방 창문에는 불이 켜져 있다. 두 시간쯤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경찰서에 가서 세 명의 경관과 함께 집 뒤쪽의 창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서자 2층으로 가는 계단위에 극심하게 난타당한 채 허벅지와 다리가 처참하게 잘린 랑슬랭 부인과 딸 주느비에브 랑슬랭을 발견한다. 정말 끔찍한 일은 두 모녀의 숨이 붙어 있을 때 맨손으로 뽑아낸 안구가 계단 양탄자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 처참한 살해 현장을 확인한 경관과 랑슬랭 씨는 입주 가정부 크리스틴 파팽과 레아 파팽의 시신을 확인하게 위해 2층으로 향한다. 하녀들의 방은 굳게 잠겨 있고 열쇠 수리공을 불러 방문을 열자 파팽 자매는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살아있었던 것이다. 바닥에는 두 모녀를 살해할 때 사용한 망치가 놓여 있었으며 두 자매가 바로 살인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들은 순순히 살인을 인정했고 살인에 사용한 칼은 랑슬랭 부인의 시체 밑에서 또 다른 도구인 양철 물병은 계단에서 발견되었다.

  이 엽기적인 살인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위한 설정이 아니라 1933년 2월 2일 프랑스의 르 망 시 브뤼에르 가 6번지에 벌어진 세기적인 살인 현장의 모습이다.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전 유럽은 경악했으며 냄비처럼 들끓었다. 훨씬 더 끔찍한 살인 사건과 연쇄 살인범과는 비교되지 않는 특수하고 대체 불가능한 힘을 부여한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재생산되는 문화의 코드가 되고 있다.

  레이첼 워드워즈와 키스 리더가 공저한 <잔혹과 매혹>은 이렇게 단 하나의 살인 사건이 가져온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선 1장에서는 살인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사실fact에만 집중하고 있다. 객관적 사실들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기 때문이다. 2장에서는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 라깡과 데리다, 들뢰즈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들의 관심과 저작을 중심으로 사건을 분석하고 있다. 3장에서는 ‘매혹당한 작가들’이라는 부제로 해석과 분석을 예술가들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마지막 4장에서는 영화 속의 자매 살인자의 모습들을 분석하며 수없이 많은 영화로 최근 2000년까지 재생산 되고 있는 두 자매의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세상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살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이 사건은 계급 간의 갈등, 즉 주인과 하녀라는 특수한 관계 때문에 벌어진 사건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또한 두 자매는 근친상간의 동성애자였던 사실이 밝혀지고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것과 같은 생활을 했던 유년시절 등이 알려지면서 다양한 형태로 해석되고 논란은 증폭되었다. 언니 크리스틴 파팽은 단두대 형을 언도 받았지만 대통령에 의해 종신형으로 감형되어 복역중 1937년 정신병원에서 사망한다. 동생 레아 파팽은 10년 노역형을 치르고 최근까지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의 독특한 범죄행위가 주는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맨손으로 뽑아내고 한 집에 거주하던 여주인과 딸을 망치와 칼로 두 자매가 협력해서 살해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르트르의 <벽>, 장주네의 <하녀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연륜의 힘> 등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로렌스 하비의 영화 <의식>, 니코 파파타키의 영화 <심연> 등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이후 2000년에 제작된 <살인의 상처>, <파팽자매를 찾아서>에 이르기까지 두 자매에 관한 관심을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물론 이 책은 학문적 관점과 정신분석이나 예술적 관점에서 두 자매의 삶을 재해석하고 분석하는 것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왜, 도대체 왜 그런 방식으로 두 모녀를 살해했으며, 두 자매의 관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라깡의 문구를 빌리자면 ‘샴 쌍둥이 영혼’을 지닌 인간에 대한 보고서인지도 모른다.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와 비참한 현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한 방식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 많은 미스터리가 숨어있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지나치게 간접적인 서술과 지금까지 출판된 책과 영화를 통해 2차적이고 종합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본질에서는 한발 물러선 느낌까지 전해준다.

  하지만 사건 자체가 주는 ‘잔혹’과 그 잔혹이 불러일으키는 ‘매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많은 작가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계속된다. 21세기에도 사람湧?삶은 이어지고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탐구는 이어질 것이다. 20세기에 벌어진 처참한 살인 사건이 주는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의 육체와 정신에 대한 증폭되는 의문들이 이 책이 내게 건네는 의미이다.

  하늘은 회색이어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계속되겠지만……


2005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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