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창밖에 비가 내리는 10월의 어느 하루는 수없이 많겠지만, 오늘은 기억될만큼 하늘이 낮은 회색빛이고 가을 바람 소리가 발목까지 시리게 하는 느낌이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웁다’는 말 한마디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 열일곱 살 때의 일이다. 연습장에 끄적거렸던 그 한마디가 가끔 첫사랑의 추억처럼 생각난다. ‘그리움’은 인간의 근원적 슬픔만큼이나 통속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치유될 수도 없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더욱 없는 그런 감정일 뿐이다.

  문제는 그 ‘무엇인가’가 ‘누군가’로 바뀌면서 맺게되는 관계의 고통과 인간에 대한 그리움과 실존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람을 그리워하고 인간을 싫어하면서 인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런 면에서 많이 동떨어져 있다. 보여줄 것도 내세울 것도 그리고 궁금한 것도 별로 없으니 말이다. 특히, ‘인간’에 대해서라면.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거나 특별한 생을 누리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혹은 남들과 많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발동하면 그 사람의 뇌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마이크를 들이미는 사람이 바로 김경이다. 그녀의 인터뷰집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는 그런 책이다.

  인터뷰이의 선정이 일관성 없게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 다소 당혹스럽고 혼란스럽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대수 다음이 노무현이고, 노무현 다음이 싸이다. 그렇지만 모두 독특한 성격을 지닌 인물들이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다.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어디에 살든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사람의 진면목이 궁금해 참을 수 없는 사람들로 김경의 눈에는 비치는 모양이다. 그런대로 그녀의 생각에 동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따라 많은 사람들과 잠깐씩 대화를 나눈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책이다.

  깊이 있게 여러 번에 걸쳐 한 인물에 대해 분석적인 인터뷰를 하고 다양한 그 사람의 모습들과 변화하는 과정들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인터뷰어 지승호와 김경은 다르다. 바자 피처 에디터라는 직함답게 패션과 최근 유행의 흐름을 짚어내는 가운데 인물을 선정하지만 때로는 바자라는 잡지와는 무관해 보이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진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한 사람에 대해 보고 듣고 대화한 내용을 가감없이 그대로 실어 놓은 앵무새같은 인터뷰와 김경의 인터뷰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녀의 화려한 글발과 감각적 태도는 가장 큰 장점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기본일 것이고 그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식과 그 사람을 해설하는 방식이 다분히 타고난 듯한 감각과 센스로 무장된 섬세함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고 세련된 문장으로 부담스럽지 않게 전달할 줄 아는 능력이 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그저 편안하게 평범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읽는다면 나름대로 의미있는 접근이 된다.

  표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인터뷰이들은 하나같이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이다. 매혹의 정도도 다르고 기호와 취향도 다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인물들을 선정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김훈, DJ DOC, 함민복, 강혜정 …… 김윤진, 이우일, 주성치, 크라잉넛, 노무현, 싸이. 무려 22명이 등장한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한데 섞어 놓은 책은 만나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들은 단순히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이라는 공통점만 가지고 있는 걸까?

  개인적 판단인지 모르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들에게 ‘외로움’을 발견했다.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이 아닌 실존적 외로움이 보인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실력을 인정받으면서도 그들의 말에 묻어나는 외로움의 정체를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내 촉수의 부정확한 판단일지도 모르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그들의 말이 진심으로 닿는다. 공허나 허무와 다른 이름으로 넓은 공간을 채우는 공허한 울림처럼 자신에 대해 그리고 김경의 물음에 대답하는 그들의 표정이 보이는 듯싶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부족한 내게는 재밌있고 유쾌한 경험이었다. 무엇이든 즐겁고 경쾌한 발걸음을 내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한다. 김경이 그렇다. 김규항의 말대로 그녀는 ‘대단한 꼴값’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맞은편에 앉아 일한 적이 있다는 소설가 김연수의 소개글도 김경 짐작하게 한다.

  가을비 오는 날 커피잔을 앞에 놓고 낯선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청승맞지 않게 시간이 잘 갈 것 같다. 뒤페이지 카피처럼, 사람만큼 흥미롭고 매혹적인 텍스트는 없다. 나는 동의하지 못하지만.


200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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