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박꽃
나카가와 요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샘터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사랑받고 싶어 몸부림치는 불행한 영혼은 잠 못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과 분노로 표출되어 타인에 대한 테러에 다름없음을 알기나 한 것인지. 또, 호의와 배려에 대한 감사를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소유욕으로 인한 간절함과 타인에 대한 감정조차 조절하고 싶어하는 광기에 가까운 안타까움을 사랑으로 착각하며 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면서 항상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의 불행을 과장하며 인생은 외로운 거라고 울부짖거나 내 불행이 전인류의 그것을 합한 것보다 더 치명적이라고 우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거나 슬쩍 손을 빼고 대상에 대한 분노로 그 감정의 방향을 선회한다. 미친짓이다.

  아름다운 사랑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상대를 인정하고 나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랑은 원한다고 얻어지는 뽑기 인형이 아니라 인형통 앞에서 애쓰는 그를 위해 통 속에 내 인형을 채워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다. 법과 제도, 윤리와 도덕의 테두리를 넘어 근원적 사랑에 대한 정의는 나름대로 다 다를 수 있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타인을 규정해버리는 사랑은 서로에게 얼마나 치명적인가. 아니, 사랑이 있긴 한 것일까? 어떤 감정 상태를 사랑이라 부르는가? 사람마다 다른가?

  사랑이 어디 있는가? 영원한 사랑을 믿는가? 믿고 싶다면 나카가와 요이치의 <하늘의 박꽃>을 읽어보라. 1936년, 일본식 아니 나카가와 요이치식 절대 사랑과 만나게 된다. 일본 근대문학의 여명기에 탄생한 사랑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 때문에 저는 오늘에 이르는 20 몇 년 동안 그녀를 가슴에 새기는 운명을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애를 걸었습니다. - 본문 6페이지

  사랑은 아름답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호사스런 감정이며,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의 과다 분비로 인한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는 환각작용이다. 얼마나 기쁜일인가. 그 상태를 20 여년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20여년간 상대방의 마음을 괴롭힌 한 여자를. 세상에서 가장 지독한 여자로 기록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서 도덕과 윤리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아니 넘지 않고, 한 인간을 몰락(?)시킨 여인의 마음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배반이다. 요이치는 또다시 사람들에게 묻는다, 사랑이 무엇인가?

  주인공 남자는 일곱 살 연상의 결혼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일방적인 짝사랑이 아닌 것이 문제다. 여인도 그 남자를 사랑한다. 섹스를 하지는 않았으나 그녀는 남자의 마음을 가져가 버린다. 지독한 사랑에 빠진 남자는 모든 인생을 그녀를 생각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에 바친다. 몇 번의 프로포즈를 거절받지만 남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결혼이라는 도피처를 선택하지만 곧 헤어지고 만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그 남자는 끝내 사랑하는 사람의 허락을 받는다.

  스물 한 살에 그녀를 처음만나 마흔 다섯이 되어서야 그녀와의 결합을 꿈꾼다. 그러나 평소 몸이 약했던 그녀는 약속한 시간까지 서서히 죽어가고 어느날 그녀의 유서와 같은 편지를 받고 그 남자는 절망한다. 무려 23년간 그 남자가 기다린 것은 단 하루라도 그녀와 같이 살아 보고 싶었던 간절함이다. 사랑의 목적이 결혼인가? 아닌가? 남자가 기다린 것은 그녀와의 결합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신념과 집착이 이루어내는 유일무이한 거룩함은 아니었을까?

  지독한 사랑은 지독한 자기애와 결합된 집착이다. 자신의 스타일과 생각대로 타인을 규정짓고 같은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안되면 불행한 일이 벌어진다. 절대 혼자 불행을 감내하는 인간은 많지 않아 보인다. 현실은 어떤가? 이 소설을 쓴 요이치는 이런 사랑을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아니면 현실에 없는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절대 사랑을 그려보고 싶었을까? 철지난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밖에 난 몰라’라고 외치고 싶었을까?

  ‘하늘의 박꽃’이 되어버린 그녀를 생각하고 평생 사랑한 한 남자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고 그 남자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으며 동일시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태도와 방법은 다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 대상과 시기도 다 다르다. 평가하지 말자.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잴 수도 없고 부피와 무게를 가늠할 수도 없다. 사람들 가슴속에 자신이 키워온 크기만큼 존재할 뿐이다. 다만 사랑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만 비롯된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싶다. 집착과 자기애적 정신병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은 시간만 흐르면 치유되지만 분노의 대상과 치명적 유혹을 견뎌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시간만으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남는다.

  문학과 현실 속에서 사랑은 영원히 계속된다.사람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통제할 수 없는 마음 때문에 괴로운 많은 사람들은 소설 속 주인공 남자처럼 외친다.

  그때만큼,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과 같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던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세상을 사는 순리임을 저는 몇 번이고 저 자신에게 깨우쳤습니다. - 본문 62페이지


2005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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