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써라 - 글쓰기.읽기.혁명
데릭 젠슨 지음, 김정훈 옮김 / 삼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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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심상사’에서 ‘청소년 문학 창작학교’ 캠프에 갔을 때 박동규 교수를 비롯한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 고정관념을 버려라. 둘째 낯설게 바라보라. 물론 내가 나름대로 얻어낸 결론이지만 문학적 글쓰기의 기본 토대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나 낯설지 않은 작품은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 후로 접하게 되는 시나 소설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었고 지금도 가끔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말들이다.

  4차 교육과정 시절이었다. 교과서는 ‘바이블’이었고 마르고 닳도록 암기하고 또 외우면 된다. 교과서 이외의 지문은 학력고사에 출제된 적도 출제될 필요도 없던 시절이었다. 신동엽의 <금강>을 밤새워 읽지 않는 대학생의 되지 말라는 고 3 담임이었던 국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대학보다 <금강>을 먼저 만났다. 인생이 도움이 될만한 국어 교육과 글쓰기 교육은 그 후로 단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스스로 찾아 나서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교육 과정상 정상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교 교육 과정상 ‘쓰기’의 심화 과목인 ‘작문’이라는 과목이 있지만 대개의 경우 고 3에 배치해서 언어 영역 문제집을 풀거나 ‘작문의 절차 5단계’의 지식 전달 교육으로 끝난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와 중학교 시절 의무적인 독후감 제출이 전부로 기억된다.

  열악한 글쓰기 교육이 현재도 다름없음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체계적이거나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이 없거나 불가능한 현실을 비추어 볼 때 대입에 반영되는 ‘논술’ 시험은 국민 전체가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사기극이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가르칠 수 없거나 ‘작문’을 선택하지 않으면 배울 기회조차 없는 ‘논술’을 언제 누가 가르치고 배워야 하나? 글쓰기를 통해 그 사람을 판단한다는 취지에 적극 동감한다. 하지만 현실적 대안과 방법론의 문제를 간과할 수 없다. 모두가 고민하고 방법을 바꿔야 한다.

  데릭 젠슨의 <네 멋대로 써라>의 가제를 ‘어떡하면 안 가르칠까’였다는 후기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말이다. 글쓰기는 삶의 모습이어야 하며 사고 과정의 반영이어야 한다. 붕어빵틀처럼 동일한 방식의 주입식 교육을 받고 부모로부터 일찍부터 경제교육이라는 미명아래 자본주의 속성과 경쟁 원리를 몸에 익힌 학생들은 수입과 직결된 직업을 선망하며 때로는 어른보다 더 속물적 성향과 배타적 이기주의를 드러낸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견해일까? 그렇지 않다.

  데릭 젠슨은 높이 뛰기 선수로 활약했으며 캘리포니아 북부 해안가에서 살면서 산업화로 인한 문명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선생이자 농부이며 양봉업자이기도 하다. 여러 대학과 교도소 등에서 글쓰기를 가르친 방법과 내용을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풀어 나가고 있다. 항목별로 설명하고 있지도 않으며 특별한 방법을 제시하지도 않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가 제시하는 첫 번째 글쓰기 원칙은 ‘읽는 사람을 지루하게 하지 마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글의 종류와 쓰는 목적과 방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루하지 않은 글을 읽고 싶은 마음은 모든 사람의 공통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루하지 않은 삶과 생각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르게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조금 더 깊이 고민하는 방법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들과 실제 수업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글을 쓰고 다듬는 방법의 핵심 원리는 경험적, 실천적 글쓰기라고 말할 수 있다. 자발적인 글쓰기가 선행되어야 하며 진심을 담아야 하고 온몸으로 글을 쓰되 자신만의 이야기를 해야한다.

  줄쳐진 노트의 줄을 무시하고 대각선으로 길게 편지를 썼던 시절이 있었다. 파란색 볼펜으로 반듯한 사각형 노트나 편지지를 대하는 마음은 누구나 답답하다는 것이다. 일정한 형식과 동일한 방식의 글쓰기는 공장에서 구어낸 공산품처럼 재미없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삐딱하게 쓰려면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고개를 5°쯤 기울이고 다른 각도와 시선으로 바라보면 된다. 글쓰기의 시작은 거기서 부터다.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파악하려는 노력,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알고 싶은 욕망,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나만의 무엇인가가 가슴에서 폭발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 편이 낫겠다.

  일상적인 글쓰기는 우리의 생활이다.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하다 못해 문자를 보내고 친구에게 메모를 남기고 일기를 쓴다. 모두가 소중한 개인의 기록이며 의사 표현 행위이고 생각과 삶의 반영이다. 두려워하?말고 저자의 말대로 멋대로 써야 한다. 그렇게 할 것이다.


200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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