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무거운 이유 창비시선 252
맹문재 지음 / 창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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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 '책이 무거운 이유'중에서



  맹문재의 시집 <책이 무거운 이유>의 표제작 중 일부다.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그곳에 숨어 있는 진실을 알지 못하는 곳에 혹은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에 항상 시인들의 시선과 손길이 먼저 닿아 있다. 그래서 나는 시를 읽는지도 모른다. 맹문재의 표정은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화가 난다. 말간 얼굴로 왜 그러냐고 묻는 아이의 순진한 표정은 때로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하물며 그것이 어른의 것이라면 느낌이 어떨까? 물리적인 나이가 왜 의미가 없는 것인지 나는 살아가면서 느낀다.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이 있는가하면 노인의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는 십대도 있다. 맹문재의 시선은 그것과는 사뭇 다르게 진지하다.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과 눈감아버리고 싶은 일들을 들추어내고 쿡쿡 찔러본다. 그리고 묻는다. 아프냐고.

  그리고 그 애매한 실체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면서 울부짖지 않고 무심히 투덜댄다. 소시민적 비애와 생활에 대한 발견이 그래서 새롭게 다가온다. ‘억울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그것이 억울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 준 나이테처럼 선명한 우리들 삶의 자국들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나온 80년대, 청년 시절에 대해 말하는 방식은 선동적이거나 운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거나 마음의 빚을 청산하기 위한 방식이 아니다. 그것이 맹문재 시의 특징이다. 시대를 벗어나 걸어가고 있는 중년 남성의 뒷모습은 패배자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얘기한다. 그가 얘기하는 미래는 어떤 것인지 각자 찾아볼 일이다.


1980년대에 대하여

나는 그를 원망한다
그 때문에 노조원인 나는 안정된 직장을 잃었고
첫사랑을 빼앗겼다
거대한 여당에 표를 찍을 수 없었고
신물 사설에 밑줄 긋지 못했다
더 억울한 것은
종달새 소리와 흰나비를 쫓던 순진한 가슴에
적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성실한 회사원이 되었을 것이다
적금 액수를 따지고
부서장의 성격에 관심을 갖고
승진과 아파트 가격에 신경 썼을 것이다
틈나는 대로 주식에 투자하고
주말이면 낚싯대를 챙기고 친목 바둑을 두고
직장간 친선 축구대회에 나가 공도 찼을 것이다

그 모든 기회를 잃어버리고
나는 불만만 많은 소시민이 되었다
산다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분배와 정의와 환경오염을 괜히 문제 삼는다
술을 마시며 이데올로기까지 따지는
추상적인 인간이 된 것이다

부정의 가치를 운명으로 받아들인 나는
억울하지만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지만 시선을 멀리하면 결코 깨끗하지 못하다. 시원한 바람이 귓불을 간질이는 가을밤 공원에 산책을 나가보라. 어둠의 저편에서 우리를 응시하는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우리를 가두고 있다. 내 안에 나를 들여다보듯 우리가 서로를 들여다보고 있다. 아니 들여다 보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왜 시를 읽는가. 대답없는 시대의 메아리를 위해, 아무것도 ‘없는’ 시집에서 무얼 찾는가. 그래서 이제 아무도(?) 시를 읽으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래서 시인인 이렇게 답한다.


시집읽기

누구도 믿지 않는다면 방문 닫아걸고 읽었다
시집 속에 등불은 없었다
늙은 신도가 천국을 외치는 지하철역에서 읽었다
시집 속에 일할 자리는 없었다
전투경찰이 어디론가 바쁘게 몰려가는 거리에서 읽었다
시집 속에 조용한 공원은 없었다
맹인 부부가 뽕짝을 부르는 육교 위에서 읽었다
시집 속에 향수는 없었다
재건축 아파트 값이 홍수처럼 넘치는 동네에서 읽었다
시집 속에 따뜻한 방은 없었다
사채업자가 채무자를 두들겨 패는 골목에서 읽었다
시집 속에 신용대출은 없었다
포주가 처녀들의 자궁을 들어내는 산부인과에서 읽었다
시집 속에 어머니는 없었다
가두리 양식장을 허가하며 표를 긁어모으는 군청에서 읽었다
시집 속에 수질 오염은 없었다
친일문학상 후보에 오른 것을 자랑하는 시인 앞에서 읽었다
시집 속에 지식인은 없었다
마흔의 나이에 낙향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읽었다
시집 속에 내가 받을 이자는 없었다
불합격 통지서를 찢듯 쓰린 배를 움켜쥐고 읽었다
시집 속에 배고픈 내가 있었다


 뭐 별로 대단한 것은 없다. 당연한 말이다. 책 속에, 시집에 뭐가 있겠는가. 삶의 ‘진정성’이라는 모호한 대상을 들여다 보고 싶은 욕망만 제거할 수 있다면 그리 궁금할 것도 없는 세상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도 다시 더 한번,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라고 말한 소월은 뭐가 그리웠을까. 인생의 행복은, 삶에 대한 사랑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다.


200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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