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 바티칸의 금서 돋을새김 푸른책장 시리즈 4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져도 군주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 군주라는 지위는 군주국의 형태로 남아 있는 나라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공화국에도 군주의 지위를 가진 사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들의 지위와 역할이 많이 달라졌으나 변하지 않는 치세의 전략은 현재도 유효하다. 500여년 동안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그만큼 군주와 백성 사이의 관계, 군주와 신하들 사이의 관계, 군주와 다른 군주와의 관계 등을 가장 현실적인 관점에서 논하고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지역의 패권을 잡기 위해 군주가 지녀야 할 덕목은 물론이고 외교 문제와 신하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상세히 밝히고 있다.

  고전은 현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문제만으로도 그 역할은 충분하다. <군주론>의 상세한 내용은 당시의 이탈리아의 정치, 역사, 외교, 문화 등 폭넓은 시각과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고 분석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배경지식의 역할 이외에는 다른 의미는 없다.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의 로렌초에게 이 논문형태의 책을 헌사한 이유는 당시 교황 알렉산더 6세의 아들이었던 체사레 보르자를 이상적인 군주로 설정하여 피렌체의 굳건한 기반을 다지고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것이었음은 스스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현실 군주의 실전 지침서이면서 자신의 능력과 안목을 보여주기 위한 처절한 목적이 숨어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공화국 형태의 나라에서 군주는 대통령에 해당한다. 물론 그들이 가진 권리와 의무, 국민들과의 관계가 군주국과는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현실 정치의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군주론>의 이야기들과 많이 다르지 않다. 흔히들 ‘마키아벨리즘’이라는 잘못된 용어로 군주의 냉혹함과 인색함, 잔혹함과 두려움의 덕목들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군주론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고 당시의 사회사적 관점에서 그 의미를 짚어보고 고민해본다면 도대체 마키아벨리의 의도가 무엇이었으며 군주론에서 이야기하는 군주가 지켜야할 덕목들에 대한 세인들의 오해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된다.

  말하자면 국제 정세와 국내 정치의 혼탁한 소용돌이 속에서 강력한 군주국으로 나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갖추어야할 군주의 덕목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인간관계와는 달라야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군주라는 특별한 자리에 오르기 위한, 혹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군주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들은 혼란한 국제관계에서, 그 힘의 논리에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나름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시대와 상황이라는 측면을 고려해 본다면 마키아벨리의 주장과 견해는 충분히 의미있고 수용될 수 있는 정도의 견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 책은 단 한 사람의 독자를 설정하고 집필된 것으로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에스퍄냐,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나폴리, 밀라노, 베네치아 등 주변 국가들 사이에서 힘의 부침에 따라 몰락과 부활을 반복하는 군주들의 모습을 지켜본 외교관 마키아벨리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의 과정과 군주의 몰락 과정 그리고 굳건한 기반을 다져가는 군주의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16세기 중반의 이상적 군주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도 달라진다. 정치 형태도 달라지고 국제 관계도 변화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군주의 지위에 버금가는 지위에 오른 자와 국민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측근들을 다루는 인간 관계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충고들은 여전하다고 본다. 왜곡된 형태로 역사속의 인물이 잘못 이해되거나 한 권의 책이 지니는 의미를 과대 포장하거나 축소시키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있는 그대로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시 한번 미래를 위한 역사의 교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이탈리아와 로마의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사회문화적 이해가 바탕이 된다면 이 책은 훨씬 더 많은 논의와 해석이 가능한 책이라고 본다. <군주론>은 군주국의 종류와 성립에서 시작해서 야만족으로부터 이탈리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간곡한 권유에 이르기까지 전체 2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제 18장은 <군주론>의 핵심으로 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인용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은 군주가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덕목들이다.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군주들은 약속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으며 기만을 통해 사람들의 혼을 빼놓?데 능숙한 인물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결국 신의를 지키는 사람들을 제압했습니다. 그러므로 싸움을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수단이 있음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 중 한 가지는 법률에 따르는 痼見?다른 한 가지는 힘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군주는 짐승과 인간의 성품을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만 합니다. …… 그러므로 군주는 짐승의 성품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하며 짐승 들 중에서도 여우와 사자의 성품을 선택해야 합니다. …… 현명한 통치자라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해지거나 약속하도록 만들었던 이유가 사라지게 되면 약속을 지킬 수도 없을뿐더러 지켜서도 안됩니다. ……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군주는 어쩔 수 없이 약속을 어겨야하며, 자비심도 베풀지 말아야 하며 종교도 무시해야만 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 군주는 운명의 방향과 자신에게 닥쳐오는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자신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 군주를 바라보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자비롭고 신의 있으며 정직하고 인간적이며 신앙심 깊은 사람으로 보여야만 합니다. (본문 146~150페이지)

  전체 문맥 속에서 그리고 당시의 사회역사적 관점으로 외교 관계까지 들여다 보고 마키아벨리가 열망했던 강력한 군주를 통한 조국 이탈리아의 대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또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관계의 덕목과 민주사회에서 요구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아님은 쉽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개인적 권력과 강력한 왕권을 위한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으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바람직한 군주로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논쟁속에 휩싸여 있고 오해되고 있으며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혹은 정치와 권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거나 반대하는 지침서로 활용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0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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