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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무덤
권지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문학이 더 이상 삶의 진실과 깊은 감동을 담아내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까? 권지예를 처음 만난건 물론 ‘이상 문학상’이라는 권위를 통해서다. 2002년 ‘뱀장어 스튜’로 이상 문학상을 받은 그녀의 작품은 그것으로 첨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소설집 ‘꽃게 무덤’으로 두 번째 만났다. 이제는 여류 시인이나 여류 소설가라는 말이 사라졌다. 희귀하지도 특별한 테마만을 다루지도 않기 때문에 그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졌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깊이와 넓이, 혹은 날카로움과 감동이 무딘 소설 한 권을 끝까지 읽어내는 일은 고역이다.
9편의 장편을 묶어 놓은 이 책은 예스 24 이벤트에 소 뒤걸음으로 당첨되어 받은 25권의 소설중 하나다. 이제 10여권 남았다. 심심할 때마다 한권씩 빼 읽어면서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다. 서른까지는 소설책은 절대로 돈주고 사지 않는다는 쓸데없는 원칙이 있었다. 그러나 이젠 소설이라고 일부러 안사지는 않는다.
이 책의 첫 소설과 두 번째 소설 ‘꽃게 무덤, 뱀장어 스튜’ 정도만 읽을만하다는게 개인적인 소감이다. 단편들 사이의 공력이 고르지 못하다. 문장과 표현 주제와 깊이가 제각각이다. 작가에게 있어 소설집이란 한 시대를 혹은 한 시절을 묶는 의미일 것이다. 집중적인 주제와 세상에 대한 색다른 시각은 아니어도 무언가 집요한 정신 세계의 아름다움이거나 화려한 말빨이거나 전혀 새로운 소재이거나 독자의 눈물을 찍어내게 하는 감동이거나 무언가 한가지는 던져야 하는거 아닌가. 내가 무딘 사람인지 몰라도 아무것도 없다. 소설을 읽다 하품을 하기는 오랜만이다.
권지예의 소설을 가르는 일관된 상징은 물과 불로 읽힌다. 그리고 그 두개의 상징이 결합된 요리가 그것이다. ‘물의 연인’에서 보여주는 세월을 뛰어넘는 남녀간의 사랑은 물과 불의 이미지로 상승과 하강을 통해 만날 수 없는 운명을 전한다. ‘산장카페 설국 1km’는 드라마 단막극처럼 인물들 사이의 갈등보다는 사건에 주목하고 있지만 과정도 결말도 식상하다. ‘꽃게 무덤, 뱀장어 스튜’를 통해 인간 관계의 소통과 의미를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하려는 작가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삶에 대한 권태와 일상속에서 느끼는 말할 수 없는 울림들을 작가는 꽃게와 뱀장어 이미지로 그려낸다. 이어지는 ‘우렁각시는 어디로 갔나, 비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봉인’등은 작가의 일상적 경험을 토대가 됐든 아니든 시간 낭비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제일 나쁜 질문이 이것이다. 작가에게 던지는 질문, 그래서?
아무나 소설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여성의 자의식과 결혼 후의 불륜, 가정과 성을 주로 다루고 있는 이 소설집은 가슴도 머리도 적셔주지 못한다. 심하게 말하면 시간이 많이 아까웠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촛불의 미학’을 통해 권지예의 소설을 분석하고 있지만 그것이 그가 말하는 우리 소설사에서 새로움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만큼 가치있는 일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새로움도 없고 그 가치가 어디에 초점을 둔 것인지도 납득할 수가 없다.
가을 하늘이 흐린만큼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춥지 않은 겨울을 기대하는 헛된 욕망이 인간을 괴롭게 하는 것은 아닐까. 푸른 하늘보다 어두운 하늘이 편안할 때가 많다.
200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