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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의 즐거움 - 문화적 교양인이 되기 위한 20가지 키워드
박홍규 외 지음 / 북하우스 / 2005년 11월
평점 :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 중 마지막 단계가 자아실현의 욕구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자아실현의 욕망을 갖게 된다. 그것이 인간을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는 특징이 되기도 한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인간은 육체적 공복감을 채우고 나면 정신적 공복을 채우기 위해 목말라 한다.
인간이 살아온 문화 전반에 대한 이해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의 면면을 이해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이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를 통해 통시적 관점에서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다른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면서 공시적 관점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 철학과 예술이 걸어온 길들을 더듬고 나와의 관계를 확인 일, 그것이 교양이 아닐까?
그러나 교양이 문화 일반에 대한 얄팍한 백과사전식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해다. 그래서 우리는 교양이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식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고급 정보를 습득하고 폭넓은 사유를 통해 그것을 소화하여 내것으로 만드는 소화제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각 분야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다. 자고 일어나면 묵은 정보와 지식으로 가득한 현대인의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로 지식과 정보에 목말라하며 속도에 대한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숨가쁘게 달려간다. 이런 시대에 교양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북하우스에서 나온 <교양의 즐거움>은 현학 취미가 아닌 사람들에게 교양을 위한 작은 지침서 혹은 안내서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잡다한 정보의 지식의 나열을 위한 잡문들과는 종류가 조금 다르다. 한길사에서 2003년에 나온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이라는 책은 53명의 필자가 철학과 인문학, 사회학과 현대 사회의 쟁점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그 분야의 권위자들과 대표 저작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무려 900페이지에 달하는 두툼한 책으로 기가 질리게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칼날같은 시선으로 중요한 문제들을 정확하게 짚어낸 듯 하지만 그 많은 쟁점들을 기억하거나 다시 돌아보게 되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교양의 즐거움>은 오히려 작은 책이다. 20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문학, 철학, 미술, 사진, 만화, 사진, 건축, 음악, 영화,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지만 혼란스럽거나 잡다하다는 느낌이 없다. 우리 나라 최고의 필력을 자랑한다는 필자들의 소개답게 주제별로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월간 <신동아> 2003년 1월호 별책부록으로 나온 것을 새로 손보았다는 이 책은 편집장의 주문대로 ‘아카데믹’과 ‘저널리스틱’의 중간쯤에서 균형을 잡고 있다는 면에서 성공한듯 싶다. 아무데서나 접할 수 있는 흥미위주의 가벼운 내용은 넘어서면서도 지나치게 학문적인 용어와 접근을 배제하여 일반인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항목별로 그 분야의 역사와 기본개념을 소개하고 있는 일반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한국적 상황이다. 외국의 번역서는 그야말로 교양으로 그칠 수 있겠으나 이 책은 현재 우리 상황에 접목되고 있는, 혹은 활발하게 논의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문제들까지 생각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국내 학자들의 글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살려내고 있다.
어떤 책이든 한 권의 분량에 20개의 주제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분량의 문제는 감수할 필요가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안내서와 참고서를 통해 각 분야의 길잡이 노릇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넓이와 깊이를 확보하는 것은 이 책을 읽은 후에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잡다한 지식과 쓸데없는 정보로 머리를 가득채워 그 효용 가치를 논하는 일은 어쩌면 부질없는 일이다. 하나의 지식과 교양이 그 사람을 변화시키고 현실 생황에 적용된다는 문제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교양은 실용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도 문제가 있겠으나 사회를 보는 눈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 삶에 대한 성찰을 위한 필요 조건이 될 것이라는 정도로 교양을 정의하면 어떨까 싶다. 교양있는 사람이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그 준비 단계나 가벼운 몸풀기 정도에 값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신선한 야채로 에피타이저를 즐기듯이 읽기에 가장 적합한 책 중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선택과 집중은 물론 각자의 몫이지만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보는 일도 때로는 중요한 일이다. 고개를 너무 높이 들어 하늘만 쳐다보는 일도 문제지만.
200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