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은 논술이 아니다 -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의 글쓰기 3
탁석산 지음 / 김영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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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 개정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게 아니라 배부른 돼지들 몇 마리가 꽥꽥거리고 있다. 그 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하나? 민주국가에서는 소수의 의견도 중요하니까? 사학재단을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아이들을 맡겨왔다. 재단 전입금이 중등의 경우 2%, 대학의 경우 8%에 불과한 학교들이 신입생 선발을 거부하고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말에 지나가던 미친개가 웃었다는 뉴스 속보는 없었을까? 개방형 이사제의 3분의 1에서 4분의 1로 개악되어 통과된 것도 그 효과가 의심스러워 탐탁치 않은데 사학 재단들이 보이는 반응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더구나 모 정당의 대응방식과 국회에 들고 나온 구호의 내용은 역사에 길이 남으라!
 
  교육에 대해 얘기하라면 4천만가지의 해법이 나올 것이다. 국민 모두가 교육부 장관으로 손색이 없을만큼 전문가 집단으로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태어나서 평생 학교만 다니는 사람뿐만 아니라 한글을 겨우 깨치기 시작하면 학교문제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모든 것은 대학입시로 통한다. 교육 문제의 본질은 대학입시로 귀결된다. 대학의 서열화, 즉 대학입시 제도의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모든 교육 현안들이 지나간 유행가요 씹다버린 껌만큼 지루하게 여겨진다. 대입제도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삶의 형태를 결정한다.

  2008학년도 입시부터 내신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수능에서 표준점수와 백분위 점수가 사라지며 문제은행 제도가 도입된다. 학기별, 과목별 상대평가로 내신 등급제가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으며 수능은 과목별 등급만 통보된다. 대학은 수능에서 같은 등급을 얻은 학생들을 내신과 논술로 선발할 수밖에 없다. 점차 독서이력철이 생활기록부에 포함되기 때문에 온 나라가 논술 열풍과 독서 광풍에 시달린다. 한글을 배우면서 부모들의 독서 전쟁이 시작되어 어린 시절의 독서습관을 만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마치 영어와의 전쟁처럼. 매체의 발달과 유초등 학습지, 출판 시장은 활황이다. 상장된 웅진은 떼돈을 벌었고 전통적인 교육열과 자식사랑으로 도서시장은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지나치게 부정적 시각으로만 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안다. 나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어떤 방법이 있는가를. 제도 개선이 우선이겠으나 독서와 논술의 문제는 냉정하게 점검하고 판단해야 바보가 되지 않는다.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3 권은 논술에 관한 이야기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도 미국의 에세이도 아닌 우리 나라 대학에서 만들어낸 돌연변이 변종 논술에 관한 이야기다. 이 논술은 다른 논술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학생과 학부모가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면 가르치는 사람은 자연히 알게된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목전에 다가온 입시를 두려워말고 그 실체부터 분명하고 선명하게 파악한다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산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논술은 논술이 아니다>는 제목의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고개가 아플 정도로 끄덕였다. 어떤 책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과 혹은 평소 자신이 하던 짓과 일치하는 부분이나 공감하는 부분에 흐믓해지는 경우가 있다. 구체화 시키지 못했거나 깊이 생각해보지 못한 몇가지 부분을 제외하고는 논술에 대한 개인적 견해와 이야기들이 완전히 일치한다. 시원스럽고 통쾌한 마음으로 읽었다.

  주변에 논술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나 예비 수험생이 있다면 무조건 선물하라고 권할 만한 책이다. 200여페이지 밖에 안되지만 우리나라 대입 논술이 어떤 것인가는 모두 담겨있고, 가장 정확하고 쉽게 분석되어 있다. 논술이 논술이 아닌데도 논술이라 떠드는 많은 사람들이 착잡할 것이고 그 거대한 산에 가로막혀 막막해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작은 길잡이와 등불 역할을 충분히 할만하다. 논술은 논리적인 서술의 준말이다. 논리적이라는 말은 논증을 포함해야 한다는 말이다. 각 대학의 논술은 논제와 제시문에 모든 논리가 숨어 있고 그것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확인해서 논증을 만들어내면 된다. 사실 공교육에서 짐지고 있는 쓰기 교육이 체계적으로 평소에 이루어지기만 해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늘 이상과 현실의 불협화음 탓이라고 돌릴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책을 읽고 글쓰기 공부를 하는 이유가 대학 입시를 위해, 특히 논술이라는 거대한(?) 목표 때문이라면 학생들은 지옥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독서와 논술에 대한 어른들의 반성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필독 도서 목록들을 펼쳐들고 책을 팔거나 새물결인지 헌물결인지 하는 단체에서 시행하는 엽기적 ‘독서인증제’에 휩쓸리지 않고 제대로된 삶을 위한 책읽기와 아이들의 생각 키워나가는 바른 글쓰기에 대해 어른들이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나 소설을 쓸 작가가 될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는 늘 쓰면서 살아간다. 그것이 기록이든 아니든 의사 소통과 표현 수단으로서 글쓰기의 중요성을 더 강조할 필요는 없다. 좋은 책과 만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낫다. 한 눈으로는 책을 보고 한 눈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을 우리 모두는 실천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나부터 반성할 일이다.


200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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