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문학의 형식과 내용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논쟁 자체의 의미를 넘어서 분리 될 수 없는 상보적 관계에 놓여있다. 형식이 중요할 수도 없고 내용만 앞세울 수도 없다. 시든 소설이든 그 형식적 특성과 내용이 어우러질 때 예술적 성취를 이루어 낸다. 그러나 이런 형식과 내용이 항상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절제와 균형이 가장 높은 예술성을 담보로 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마누엘 푸익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는 형식의 승리다. 소설이 독자에게 전해줄 메시지와 주제를 명확히 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렇지 않은 것이 타당한가 하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논쟁의 의미가 없다고 본다. 논쟁 이전에 작가의 특성과 개성에 따라 소설에 대한 태도와 소설 속에 담아내고 싶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 소설은 1973년에 출판된 마누엘 푸익의 세 번째 소설이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것이 늦은감이 있다. 내용의 파격과 형식의 독특함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 소설을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성에 대한 묘사와 다양한 욕망의 형태들을 통해 뒤틀리고 일그러진 아르헨티나 페론 정권의 추악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는 평가가 가능하겠다.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과 이성에 대한 성적 충동을 다룬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이거나 우리 문학 풍토에서 한창 떠들썩했던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한 논쟁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번역이 미루어졌거나 단순하게 돈이 되지 않을 것같아 번역하지 않았을 것이다.

  변태적 성욕에 대한 남자 주인공 레오의 욕망과 여주인공 글라디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이 소설에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결론을 독자에게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의 성장 과정과 이후의 의식의 흐름이 어떤 양상을 띠고 변화하는지를 통해 인간의 무의식과 내재된 욕망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가 이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리둥절한 독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오래전에 봤던 영화지만 왕가위가 그토록 극찬했던 소설 <부에노르아이레스 어페어>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가위의 말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서사 구조의 다양성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곧 소설과 영화의 공통점이라면 두 사람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같은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감독이라면 - 모든 감독이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 소설과 다른 예술 장르에서 영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몇 백년간 혹은 앞으로 몇 천년간 수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와 유사한 사건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하는 것은 모든 감독과 소설가의 고민일 것이다. 무조건 독특한 방식과 새로운 기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질 수 있는 용기는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왕가위의 극찬이 아니어도 영화 <해피투게더>를 보지 않은 사람이어도 이 소설은 남미 문학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다만 심장이 약하거나 윤리 교과서를 베고 자거나 천사와 친하신 분들은 읽지 마시기를……

  좁은지 넓은지 비교 대상이 없어 알 수 없는 이 지구상의 모든 인류의 생각과 삶의 모습들은 따로 또같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속에서도 분명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지닌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60억의 생각이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생각조차 얼려버릴 만큼 계속되는 이 추위가 ‘봄’에 대해서 상상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것처럼.


200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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