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깊은 숨을 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도달하는 통증. 무엇인가 쓰지 않고서는 버텨낼 재간이 없는 사람들 - 天刑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 시인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것에 충실한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 역할에 즐거움을 느끼고 스스로 몰입의 즐거움을 느끼는 작가는 얼마나 행복한가?

  흔히들 한 편의 소설이 전하는 의미를 확대해석하거나 외면해 버린다. 물론 모든 책은 선택일 뿐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순 없다. 하지만 잠시 일상을 벗어나거나 알지 못했던 시간과 역사에 대해 혹은 무심했던 진실들에 대해 고민하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기도 한다. 내겐 그것이 책이 주는 의미다. 역사의 시공을 뛰어넘어 현재의 의미를 성찰하고 나를 돌아보며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본다. 거창하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결국 나는 왜 사는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늘 귀결되는 문제이므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들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행복을 느끼며 어떤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다들 거기서 거기라고 하기엔 사람들의 의식도 생활도 방법도 너무 다양하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나 21세기 초반에 걸친 삶을 마감하게 될 내 삶은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이 살았던,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할아버지 세대가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는 당연히 궁금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불과 백년 전. 멕시코 이민자들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영하의 <검은 꽃>은 탈근대의 역사 속에 주목받지 못한 미시사에 해당한다. 고종의 생각도 근심과 걱정도, 명성황후의 죽음도, 대원군이나 순종의 이야기도, 최후의 왕손이 일본에서 사망한 최근의 뉴스 보도도 사실 나에겐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때가 많다. 하지만 멕시코 에네켄 농장의 채무 노동자로 팔려간 1033명의 우리 할아버지 세대의 삶은 눈물겹게 읽힌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위정자도 아니고 오히려 그들에 의해 삶을 유린당한 민초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제국의 군인, 농민과 도둑, 파계 신부와 박수무당, 보부상 등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서 소외된 이웃들의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들은 더 가질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한 채 일포드 호에 오른 것이 아니다. 이 땅의 신산스런 삶을 뒤로 한 채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이 땅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유예된 4년간의 시간만큼 이 땅에서 더 나은 삶을 기대했던 평범했거나 그 이하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읽는 사람은 더욱 가슴이 아려온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할만한 성질의 이민사와는 사뭇 다른 측면이 있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팔려간 조선인 1033명의 운명은 1905년 대한제국의 운명을 대변하는 시간의 비극성을 대표한다.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지구의 반대편 멕시코로의 공간적 이동은 강압에 의한 탈근대를 대표하는 시간적 이동을 상징한다. 반상제도와 남녀차별 등 봉건적 요소가 붕괴되는 과정이 일포드 호의 선실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에네켄 농장에 도착한 후 노동의 과정을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것을 이민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 민족의 비극성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이야기다.

  작가의 말대로 피로써 쓴 1차 자료가 없었다면 이런 종류의 소설은 시작부터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로도 다 말해질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작가가 영원히 쓰고 싶은 소설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몰두하고 열정을 다했던 소설답게 성공적이다.

  일종의 역사소설로 분류될 수 있으나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나 영웅은 등장하지 않는다. 역사를 보는 여러 가지 시각을 점검할 필요도 없이 작가의 시선은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감상에 치우치거나 그들의 삶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객관적 정황과 사실성을 토대로 소설의 구성은 탄탄하며 인물들이 지니는 특성은 여러 주인공들의 면면들이 전체 이민자와 상황 속에 잘 어루어진다.

  에네켄 농장의 4년을 넘어 멕시코의 혁명 전쟁, 과테말라의 게릴라 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한 권의 장편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작가의 역량과 힘을 실어 좀 더 길고 다양한 면들을 보여주는 역작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추적할 순 없지만 과테말라의 띠깔에서 ‘신대한’을 세우고 사라진 사람들에 대한 사실들은 단순한 역사적 가쉽을 넘어서는 특별한 의미와 감동을 전한다. 쿠바의 카스트로와 체게바라처럼 마리오와 김이정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소설이 될 만하다.

  멕시코 이민 백 년. 많은 시간이 흘렀고 시대가 변했지만 신산스런 우리 조상들의 삶을들여다보는 일이 결코 유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나 지나온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퍼즐의 조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발 딛고 선 이 땅의 역사와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힘겹기만 하다. 과거와 미래가 통어하는 순간들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소설이 훗날 어느 순간 쓰여질 것이다. 그 때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미래보다 과거의 어느 찰나를 짚어내는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개인적 취향이다. 좀 더 괜찮은 김영하의 소설을 기대해 본다. 흐린 하늘을 쳐다보며 시간의 흐름속에 개인들의 삶을 녹여낸다면 먼지처럼 부유하는 티끌이 될 것이다. 그것들이 뭉쳐져 아름다운 눈송이가 되듯 역사는, 우리의 삶은 이름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믿는다.


200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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