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박물관 1 - 선사생활관 한국생활사박물관 1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지음 / 사계절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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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한 관심과 성찰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역사가 된다는 당연한 이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연속적인 세계관에서 보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분하는 기준과 시기 자체가 무의미하다. 공간 개념과 더불어 시간 개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의 역사를 1년으로 가정하면 인류가 발생한 것은 12월 31일 해질 무렵 오후 다섯시쯤 된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의 탄생은 해가 바뀌기 5분 전 쯤이다. 영겁의 시간 속에 한 인간이 인생을 고민하는 것은 무한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은 정말 낯간지러운 짓이다.

  시야를 좁혀 인류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내 조상의 뿌리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르치고 배워온 대부분의 역사는 왕조 중심이었으며 영웅 중심이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기록된 순간들을 되짚어 보는 것은 후손들의 호기심과 의무였으며 기록되지 않은 민중들의 삶과 생활 모습을 유추하는 일은 관심밖의 일로 치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더 소중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관심은 당연히 이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일상이 궁금하다. 영화 제목처럼 ‘생활의 발견’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역사에 관한 수많은 석학들의 견해와 사관에 대한 논의는 물론 중요하다. 역사를 서술하는 관점과 역사에 대한 해석하는 입장은 객관적 사실들에 대한 판단부터 시작해서 천양지차의 견해들이 존재한다. 그 모든 사관도 중요하고 올바른 정리와 비판도 필요하다. 하지만 조금씩 더 관심이 가는 분야는 역사의 주변에 머물러 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가 책임 편집한 <사생활의 역사>는 방대한 분량으로 유럽의 문화와 일반인들의 생활사를 정리하고 있다. 2002년에 새물결에서 번역 출간된 이 시리즈는 1권이 900페이지에 이른다. 읽지 않고 꽂혀 있는 몇 권 안되는 책 중의 하나다. 나의 게으름을 탓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생활사도 다각도로 조망을 받고 있지만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와 비교할 수 있는 책은 없다고 본다. 미루고 미루다 이제 그 1권을 시작한다. 시간을 핑계삼아 비싼 책 값을 핑계삼아 미루어 온 것을 이제야 구입했다. 지난해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에 이어 역사에 대한 또다른 시각과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 같다.

  제1권 선사생활관은 처음부터 흥미 만점이다. 기원전 4000년전의 사냥 장면과 서기 2000년 서울의 모습을 대비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생활관으로 구분되어 있다. 석기의 종류와 쓰임새가 사진 자료와 더불어 꼼꼼하면서 쉽게 설명되어 있다. 수렵과 채집 농경와 장례 등 사실적인 그림과 내용들이 철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실감나고 흥미롭다. 특별 전시실과 가상 체험실을 통해 선사시대 인류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기획과 편집에 놀랄 수밖에 없다. 정교한 내용과 자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90페이지 밖에 안되는 분량속에 일목요연하고 재미있게 당시 인류의 생활을 중심으로 서술된 이 책은 성인들은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흥미있는 역사 접근 방법의 교재로 활용될 만하다.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안목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책의 크기와 하드커버, 도판과 내용을 살펴보고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 권 한 권 각 시대를 ‘생활사’를 중심으로 정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싶다. 반복되는 일상과 보잘것없는 생활들이 모여 문화를 이루고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인간이 살아온 시간들과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간들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맛볼 수 있다. 가히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진화하고 발달하고 있는 인류의 문명이 주는 문제에 대해서도 당연히 반성하게 된다.

  선사시대와 지금의 인류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인 현생 인류와 지금의 인류는 뇌용량에 차이가 없다. 삶의 목적과 가치가 달랐겠지만 한 번 태어나고 죽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들이 느꼈을 자연과 생존의 문제 그리고 행복과 고통의 과정들을 상상해 본다. 과연 지금 우리는 그 때보다 진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시대를 뛰어넘는 이 재밌는 여행을 천천히 오래오래 계속하고 싶다. 그러고 나면 지금 여기 나의 모습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모습이 조금은 어렴풋하게?痴?않을까하는 불가능한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책과의 사귐이 지겹지 않도록, 쌓여가는 읽을 책의 목록만큼 살아갈 수 있도록 가장 작은 소망을 져본다.


06010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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