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박물관 3 - 고구려생활관 한국생활사박물관 3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3권) 지음 / 사계절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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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칠 수 없는 본능 중 하나는 타인에 대한 분노와 증오다. 안으로 향하는 눈이 없어서다. 거울을 보면서도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는 인간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항상 남의 탓이다. 한 인간에 대한 관찰과 평가가 쉬운 한 마디로 대체되거나 편견과 선입견이 되어 버린 말들은 고정된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탓이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망은 그렇게 쉽고 간단하지 않다. 그 끝없는 미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 과연 시간만일까?

  인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증오가 국가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 전쟁이다. 물론 생존권 확보를 위한 동물적 본능에 의한 투쟁이 발단이 되었을 수도 있으나 이후 인간들은 끊임없이 싸워왔다. 항상 너를 탓하면서.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지녔었고 호전적이고 적극적이며 자유로운 기상을 지녔다는 고구려의 멸망도 전쟁에서 비롯된다. 어느 쪽이 먼저였을까는 중요하지 않다. 국가의 존립마저 뒤흔들어버리는 갈등은 개인이든 국가든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의 인간성이 파괴되듯 국가는 멸망에 이른다.

  고구려의 벽화에서는 특이한 두 신이 등장한다. 야철신과 제륜신이다. 야철신은 철과 도구를 담당하는 신으로 그리스나 로마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바퀴를 관장하는 제륜신은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당시 수레를 통한 운송 수단의 발달을 보여주는 증거다. 수레는 단순히 많은 물건을 손쉽게 운반할 수 있다는 인간의 지혜를 넘어서 삶의 터전과 공간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유목과 정착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가 문제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직경 1.5미터가 넘어 보이는 바퀴는 2천 여년 전 작품으로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찬란한 발명이다.

  왕과 귀족이 사는 성안과 성밖 사람들의 구분이 생겨나고 세금 징수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끊임없이 행복해졌을까? 복잡하고 정교한 통치수단과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반비례 관계에 있다. 벽화에 그려진 왕과 귀족들의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항상 주변에 작게 그려진 사람들이다. 능력과 신분이 일치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교육과 예술 분야에서도 탁월한 진전을 보인 고구려는 이제 본격적인 인간 사회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 예술이라는 것이 생겨난 측면도 있지만 삶의 과정 속에 드러난 부분들이 실용성을 배제한 채 본격 예술도 등장하기도 했다.

  고분에 그려진 고구려인들의 생각은 지금도 비슷하다.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이다. 죽어서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 많은 부장품과 고분 천장의 그림이 그것을 말해준다.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등 각각 방위를 담당하는 동물들의 역할은 사후 세계에 인간의 두려움과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해 주었을 것이다. 어둔 밤하늘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별들을 관찰했던 선조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우리들이 바라보는 하늘과 달랐을까? 무덤에 그려진 별 그림들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다. 다만 명칭과 위치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 별들을 묶어내고 관찰하는 방식은 지금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죽어서 하늘로 간다고 믿은 것인지, 하늘로 가는 싶은 욕망을 드러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광개토대왕비문 해석을 놓고 아직도 일본과 견해가 다르다. 많은 설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답과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불행했던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비문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 해석과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살아보지 않은 과거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아 보인다. 경험에 보지 못한 상황들과 감정들에 대해 더 크게 떠들고 있는 현재 우리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민족의 자부심과 영토에 대한 아쉬움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나라 고구려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의미 이전에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 어떤 모습과 구체적인 형태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

  역사는 어떤 모습으로든 존재한다. 그것이 기록으로 남든 그렇지 않든. 개인이든 국가든. 지나온 시간과 쌓아온 세월에 대한 흔적들은 고스란히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그리고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남겨진다. 객관성이라는 성격 자체가 역사에서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다만 사실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는 방식들은 지금도, 여전히, 개인이든 국가든 반복되고 있다. 정답이 있겠는가.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인간들의 반복된 습관인 것을. 소크라테스의 말이 떠오르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너 자신을 알라’

06012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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