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통 시작시인선 49
김신용 지음 / 천년의시작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새가 앉았다 떠난 자리, 가지가 가늘게 흔들리고 있다 - ‘환상통’중에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겠지만, 88년에 무크지로 시작한 고려원의 <현대시사상>은 계간지로 전환되어 96년 겨울호까지 간행되었다. ‘모더니즘과 마르크시즘’, ‘해체주의’로 시작해서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비평, 페미니즘, 전위시론, 저자의 죽음, 라깡, 푸코, 데리다, 아방가르드, 탈식민지 문화이론, 타자에 대한 논의까지 현대시에 관한 다양한 사상적 주제들을 담아 내던 계간지였다. 책 꽂이 한 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그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책들 속에 시인 김신용이 자리잡고 있다. ‘버려진 사람들’과 ‘개 같은 날들의 기록’이 그것이다.

  김신용의 시의 주제는 고통이다. 시가 상실의 예술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고통스럽지 않은 시는 많지 않다. 그러나 김신용의 고통은 직접적인 통각에서 비롯된다. 가난과 삶의 모멸에서 비롯된 고통은 쉽게 치유되지 않고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일용잡부의 삶을 이어오며 ‘시멘트 침대’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의 고통을 무엇 때문에 시로 담아냈던 것일까?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의 시들은 여전히 아프다. <환상통>에서 보여주는 시세계는 김신용의 시가 자기영역을 확보했다는 표지로 읽힌다. 늦은 나이에 등단의 형식을 거쳐 일용직 노동자 시인의 삶을 이어온 그의 시는 깊이와 넓이를 더해 간다. 현실에 대한 안주와 나타로 대변되는 관념의 유희, 그것을 넘어선 그의 시는 깊은 울림이 있다. 시인의 경험과 깊은 사유가 길어올린 우물물에 비유할 만하다. 깨끗하고 담백하다. 군더더기나 잡스러움이 없다. 관념의 언어로 자기 만족에 함몰되는 많은 시와 비교될 수 있다.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가다듬는 내면의 고백으로 그치지 않고 가난과 신산스런 삶이 그려주는 물결 무늬가 투명하게 드러난다. 

지하도 구석에 구겨 박힌 몸뚱이 하나가 벌레처럼 꿈틀거린다
오늘도 숲 속의 너와집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뿌린 만큼 거두는 흙 속의 집을 짓고 있는 것일까?
그 꿈틀거림이, 낮게 자신을 성찰하는 자의 몸짓을 닮았다

- ‘시멘트 침대’중에서

  그들이 꿈꾸는 ‘숲 속의 너와집’은 김신용이 오래동안 꿈꾸었던 지상의 집 하나와 유사하다. 실존의 문제는 관념에 앞선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먹을것인가의 문제와 부딪히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전히 배고픈 사람들과 생존 자체가 치열한 문제인 사람들은 인식의 틀이 다르다. 그 꿈틀거림조차 ‘자신을 성찰하는 자의 몸짓’으로 볼 수 있을까? 시인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반성의 질문으로는 아쉽다. 자연에서 인간을 들여다보는 눈은 대체로 과거와 현재가 동일하다. 눈이 하나밖에 없는 비목어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성찰이 생내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두 개의 눈을 가진 비목어가 되어 가고 있다.

比目魚여,
눈이 하나 밖에 없어, 세상의 한쪽 밖에 보지 못한다는
눈이 하나 밖에 없어, 그대의 뒷면을 보지 못한다는

물고기여,

그 하나 밖에 없는 눈의, 또 다른 물고기를 만나
둘이 한 몸이 되었을 때, 세상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다는

비목어여.

- ‘비목어’ 중에서

  ‘세상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편견과 선입견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 중의 우리는 하나일 뿐이다. 그러면서 비목어를 비웃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나부터. 내가 가진 시선과 관점으로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충고가 아니라 시인은 비목어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반쪽 비목어를 찾아서 온전한 눈을 갖고 싶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그것이 사랑일까? 모두가 불행한 삶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고통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지껄인다. 귀가 따갑다. 손톱밑에 박힌 가시가 전해주는 고통은 타인의 생명보다 중요하다. 자신의 불행은 항상 타인의 불행을 능가하는 법이다.

자신의 불행에 짓눌려, 타인의 불행에 눈길 돌릴 여유 하나 없는,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 ‘다시, 풀잎에 기댄다’ 중에서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삶을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시인의 바람일 뿐이다. 타인의 불행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나와 가족의 울타리를 넘지 않는다. 이기주의와 가족주의를 넘어설 수없는 세상이다. 시인의 말이 공허한가? 각자 거울을 들여다 볼 일이다. 답이 없고 대안이 없어 답답한게 아니라 수많은 상상의 여지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는 시는 아름다운 감상주의를 넘어선 자리에 위치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김신용의 시집<환상통>에 갈채를 보낸다.

가시 1

가시에 얼굴이 비쳐 보일 때가 있다

핏방울이 묻어날 듯 날카롭게 돋아 있는 가시가
거울처럼 얼굴을 비쳐 보여 줄 때가 있다

내가 가시가 되었을 때다
내가 가시가 되어 가시를 바라 볼 때이다

그때, 가시는 드므다 된다
가시가 된 내 얼굴을 맑게 떠올려 주는 물거울이 된다

가시가 가시를 겨누는 그 전율!

내가 또 하나의 敵意 앞에 섰을 때의 삶이
덫과 같은 맑은 물거울에 파동 치는 순간!


060127-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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