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이후의 부의 지배
레스터 서로우 지음, 현대경제연구원 엮음 / 청림출판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은 세계화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글로벌 스탠다드를 배워야 한다. 그것이 지금, 현재 우리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화 이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쟁은 자본주의의 판정승으로 끝났고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세계화라는 이름표를 달고 21세기를 풍미하고 있다. 이 거대한 공룡과 맞설 수 있는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냉전시대를 지나 구소련과 동구권의 붕괴는 지구상의 이념 대립에 종지부를 찍은 듯하다. 이후 급속도로 미국의 패권시대를 이루고 있다. 유럽 연합이 탄생했으나 강력한 통일체로서 힘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며 일본은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국제 사회보다 국내 경제에 몰두해왔다. 견제와 브레이크가 없는 미국의 독주는 세계화를 미제국주의화로 인식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고 반미가 자연스런 현상으로 나타난다. 좌우의 이념대립의 극단을 보여주는 것처럼 세계화에 대한 찬반논쟁은 이미 의미없는 논쟁이 되어버린 듯하다. 세계화는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해결해야하는 구체적 현실태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는 어제 오늘이 문제가 아니다. 국가 차원의 아젠다로 본격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참여정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긴급 상황이라는 뜻이다. 올해 참여정부의 국정과제가 ‘양극화 해소’라고 하니 이제 본격적으로 모두 양극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 되었으나 무시되었거나 소홀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정부와 민간 차원의 대책과 해결책 마련이 시급하지만 여전히 남의 나라 이야기로 여기는 사람도 많다. 구체적으로 내가 밥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이미 늦어 버린다. 물론 그 단계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의 입장에서 취할 수 있는 행동과 대책은 거의 전무하다는데 이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세계화는 정부가 나서서 막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기업이나 개인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레스터 C. 서로우라는 미국인 입장에서 바라본 <세계화 이후의 부의 지배>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물론 그의 입장과 견해에 한 줄 한 줄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감정적으로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현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부분들이 많았다.

  세계화는 진행되고 있으며 제1세계 중심의 세계화와 제3세계 입장에서의 세계화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물론 세계화는 이제 선택의 문제를 넘어섰다는 가정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대안은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종속적인 산업구조와 자본의 지배구조는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다. 국가의 권력은 오히려 축소되거나 위축되고 경제권력의 힘은 막강해지고 있다. 욕심, 낙관주의, 군중심리라는 자본주의의 유전요소를 적절히 통제하는 것만이 세계화라는 글로벌 경제체제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입장에 일정부분 동의할 수 밖에 없다.

  세계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제가 스스로 진화하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의 문제를 떠나 이제 의도대로 구상하고 구축하느냐의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이 책을 계속 읽어나가도 좋겠지만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은 이 책을 아예 펼치지 않는 것이 좋다. 살아 숨쉬는 유기체와 같이 스스로 진화하는 자본이라는 괴물이 모두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듯한 불안은 나만의 기우일까? 자본주의 넘어에는 무엇이 우리의 미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 스스로 통제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미래의 사회 구조와 형태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지역간 민족간 국가간 경쟁을 넘어선 자리에 소수만 살아남는 제도가 완성될 것인지 양극화로 대표되는 세계화의 물결은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지는 수많은 논의들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로 여겨진다.

  당장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하는 미시적 접근과 국가 경제 차원에서 구상할 수 있는 거시적 문제들이 혼재에 있는 복잡성이 문제 해결에 쉽지 않은 양상을 보여준다. 저자의 말대로 세계화를 전제로 그 이후의 ‘부의 지배’에 대해 관심과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도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재는 여전히 우울하고 마르크스가 말했던 자본주?우울한 유령들이 이제야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몽상에 빠져본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가지자!”는 체 게바라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단순한 감상의 문제가 아니다. 언제나 꿈꾸어왔던 인간들의 삶이 모습이 급격한 형태로 변화하는 전지구적 모습을 떠올렸을 때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하다. 한 경제학자의 견해에 왈가왈부하는 것 이상의 논의와 대책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세계화에 동참하려면 새로운 환경에 뛰어드는 대담함이 필요하다는 서로우의 말은 다양한 문화를 가진 개인을 새로운 문화에 통합시킬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정사실로 세계화를 받아들인다면 최대의 부를 창출하려 한다면 그의 말처럼 “뛰어드는 사람이 더러 패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 사람은 항상 패배자일 뿐이다. 부는 용기 있는 자의 편이다.”라고 외치며 달려가야 하는 걸까? 부의 접근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한 고민과 점검없이 달려온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아직도 맹목적으로 달려가야 하나? 지금 우리의 자화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시간이 더 필요한가, 아니면 지금 여기에 서 있는 우리들 모두의 행동이 필요한 것인가. 각자 그리고 더불어 고민해 볼 문제다.


06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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