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상식론 - 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하여
박호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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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늘날 이른바 ‘좌파’의 자세를 아우르며, 과격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 ‘래디컬(radical)’의 어원은, ‘뿌리째 파고든다’는 의미를 가진, ‘라딕스’라는 라틴어다. 말하자면 뿌리까지 파고들어 속속들이 따지고드는, 단호한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 P. 197

  강유원이 자신을 표현할 때 래디컬하다고 표현한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색깔이다. 분명하고 군더더기 없이 그 사람을 알려줄 것 같은 매력이 있다. 한 인간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래디컬한 인간이라는 일종의 편견을 가지면 사상의 단면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잘못 표현되거나 독선에 빠질 수도 있으나 그것은 개인적 차원의 수준 문제다. 자신의 사상과 색깔을 분명히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색깔만 논해서는 될 일이 아니다. 늘 현실에서 부딪히는 문제는 실천의 문제로 귀결된다. 수많은 탁상공론은 의미없다. 다소 과격하더라도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육화된 이야기에 감동을 담고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호성의 논의와 코드(?)에 일단 동의하지만 강력하고 진심어린 주장은 공허함 울림으로 끝나버린다.

  박호성의 ‘우리시대의 상식론common sense for korean’은 일종의 편견이다. 수구꼴통 우파에서 본다면 좌파의 상식은 상식이 아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겠지만. 건전한 상식을 가진 - 여기서 말하는 ‘건전’의 기준은 뭘까? - 사람들이라면 동의할만한 상식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이것이다 말하기는 참 어렵다. 우리 시대의 상식이라니, 너희들 시대의 상식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박호성은 좌파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다. 그래서 그는 ‘진보進步는 진보眞寶다.’라고 말한다. 進步가 眞寶라니, 우파의 반응이 궁금하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기준은 상이하다. 다만 일종의 편견이라고 전제할 때 몇가지 성향과 방향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그 단순한 논리가 오른쪽과 왼쪽이다. 물론 가운데도 있지만 그 가운데가 얼마나 위험하고 더러운 처세술인지 박호성의 말을 들어보자.

  지옥에서 가장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장소가 하나 있는데, 그곳은 이승에서 위기의 순간에 중립만을 지켜온 죄인들을 마지막으로 처절하게 단근질하는 곳이라고 불교 경전은 쓰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도 역시 힘든 문제가 발생하는 위험한 순간에 항상 중립을 지키며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하는 사람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또한 아무런 위험도 따르지 않는 평화로운 순간에 과격한 말과 행동으로 일관하는 사람 역시 믿지 않는다. 우리는 이러한 기회주의적 정의감과 무책임한 과격성을 가능한 멀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 P. 279

  이 책에서 내가 읽어낸 화두는 이렇게 단순하다. 좌파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갈등하는 사회는 나쁘지 않다. 건전(?)한 우파와 참신한(?) 좌파의 갈등은 차라리 축복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아직 멀었다는 비관론 대신 비참한 심정까지 든다. 아직도 이념공방과 과거사 문제, 국가보안법, 사학법 문제에 대한 해법과 시각이 제각각이다. 많은 사람들의 많은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발전적인 갈등과 충돌은 요원해 보인다. 정치인들만의 싸움질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겪고 있는 현실의 문제이기 때문에 답답하다. 내가, 아니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을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인가. 박호성이 이야기하는 ‘상식’이 진짜 ‘상식’이 되는 날은 올 것인가?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인의 생활 철학과 해방과 통일, 한국 사회의 현주소, 이데올로기와 개혁, 전통과 진보, 자연정치론과 원시인 정치론을 거쳐 새로운 휴머니즘을 주창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 신제국주의와 한반도 민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신휴머니즘’은 저자가 꿈꾸는 유토피아다. 나도 그곳에 가 살고 싶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말하던 시인의 말은 부정되어야 할까?

  시간이 흐르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기적이며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자유의 평등은 영원한 인간의 꿈일 뿐이다. 자유와 평등이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 순진한 이상주의를 포기할 때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긴다고 믿는다. 성난 얼굴로 달려드는 기득권 세력의 얼굴을 웃는 얼굴로, 상생과 타협과 대화를 요구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을까? 끊임없는 의문부호 남는 문제가 아니다. 기다는 지차제 선거에서 사람들의 생각과 투표 방식을 들여다 보라. 그리고 정치인을 욕하지 말라. 네 이웃을 조심하고 내 입을 단속하라. 지독한 역설과 모순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박호성이 말하?우리의 사회의 문제와 상식의 의미는 깊은 성찰의 시간을 요구한다. 하지만 전방위적으로 덤벼든 이 수많은 논점에 대한 해답은 멀기만 하다. 이론적 담론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대안의 유무만으로 비판을 비난으로 치부해버릴 수는 없지만 이상적 논의와 상식 수준의 이야기들보다, 미래를 위한 큰 그림보다 현실을 들여다보는 치열함을 배웠으면 좋겠다. 단적으로,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안이 쏟아지고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여당의 무뇌아적 발상과 대책들을 살펴보라. 개혁과 진보의 이름으로 혁명이 이루져야 한다. 아니, 이름이야 어찌됐든 꿈을 꾸고 달려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06020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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