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힘 - 제3의 시 시인세계 시인선 12
함민복 지음 / 문학세계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의 중간쯤에서 허리를 펴고 등 두드리는 시인이 함민복이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가난한 삶에 대한 물결들이 파도처럼 일렁일 때 그의 시는 더 아름다웠다.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어법과 바닥까지 드러난 감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다. <우울씨의 一日>을 들고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그의 모습이 그랬다. 영종도 바다가에서 아직도 혼자 살고 있는 함민복은 세상의 잣대로 가난하다.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시인을 직업으로 선택한 그의 삶이 불행해 보이지는 않는 것은 그가 세상에 던지는 따뜻한 시선 때문이다. 그가 가진 부드러운 힘과 <말랑말랑한 힘> 때문이다.

  나를 위로하며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를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나를 위로하기 위해 꽃송이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비에게 꽃이 필요한 것처럼 누구든 위로받을 대상은 존재한다. 사람마다 그것이 다르겠지만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쓰다듬어주는 일을 잊고 살았다. 내 마음을 ‘마음아’라고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스스로를 위로하지 못한 채 눈을 항상 밖을 향해 열려 있는 나에게 던지는 시인의 서시는 그래서 아프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까? 끝을 알 수 없는 높이와 깊이가 유한한 생의 한계를 절감하게 한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은 지금 이 순간의 생을 확인하는 일이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순리와 이치가 아니라 ‘꽃침’을 맞고 싶은 또 다른 욕망이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부드러움에 찔려 환해지고 선해지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봄 꽃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

  그러나 봄이 와도 쉽게 꽃침을 맞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침도 아니고 누구나 맞고 싶어하지도 않겠지만. 꽃침대신 흔들리지 않게 닻을 내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그 닻의 힘은 ‘상처의 힘’이 되고 ‘상처의 사랑’이 되어 줄 수 있을까? 그 작은 마을마다 집집마다 숨겨놓은 사람들에게 닻은 때때로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큰 바다가 몰려올 때 사람들은 닻을 찾는 대신 정신을 놓아버린다. 그것이 훨씬 더 인간적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침착한 이성의 닻을 찾기보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쉽게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말이다. 닻은 닻일 뿐이다. 배가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줄 수 있겠지만 ‘상처’를 치유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파도가 없는 날
배는 닻의 존재를 잊기도 하지만

배가 흔들릴수록 깊이 박히는 닻
배가 흔들릴수록 꽉 잡아주는 닻밥

상처의 힘
상처의 사랑

물 위에서 사는
뱃사람의 닻

저 작은 마을
저 작은 집

‘상처’가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에 대한 미련과 희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걸 ‘그리움’이라 부른다.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

  그리움

천만 결 물살에도 배 그림자 지워지지 않는다


060203-0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