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 2 - 박노자 교수가 말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들’과 ‘당신들’은 나의 포함 여부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금을 그어 놓은 곳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당신들’이라는 말에는 소외된 ‘나’와 ‘우리들’이 존재한다. 일정한 거리감을 두고 말하는 방식인 ‘당신들’이라는 호칭은 그래서 객관성을 전제로 한다. 소설과 다른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냉정하고 분별있는 시선으로 대한민국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객관적이거나 공정한 시선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도 지니고 있다. 귀화한 러시아인 박노자는 외국인은 아니지만 법적인 문제를 떠나서 전통과 문화적 관점에서 혹은 유전적 관점에서 완전한 한국 사람으로 볼 수 없다. 내게는 그가 또 다른 유형의 주변인이자 경계인으로 비친다. 그래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소속된 집단에 대한 분석과 비판은 일정부분 한계가 있음을 전제로 할 때, 박노자의 견해에 대해 많은 오류와 문제점도 지적당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논의에 대해 기본적인 시각차를 인정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2006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에 대한 문제점과 미래에 대한 전망은 하나로 통일될 수 없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우리의 모습을 조망해 보는 모습은 항상 필요하다. 쓴소리와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박노자가 우리 사회를 보는 관점은 긍정 속에 부정이다. 경제와 문화 측면에서 괄목한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주)대한민국은 이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2001년에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반응은 다양했다. 5년 후 속편 격인 ‘당신들의 대한민국 02’가 나왔다. 참여정부가 들어섰고 박노자는 이제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을 떠났다고 해서 그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한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조심스러웠던 표현과 비판을 넘어서 때로는 과격하고 감정적인 발언도 불사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은 알면서 고쳐지지 않는 것들도 많다. 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늘 궁금하다. 그의 말과 행동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과 영향 때문이 아니라 벽안의 귀화 한국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얼마나 일그러져 있는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일상 속의 권위주의와 숭미주의, 박제가 된 학문의 자유와 합리화된 폭력들, 민족주의와 북한의 문제 그리고 보수를 넘어 진보를 주장하는 그의 이야기들은 미온적 ‘개혁’의 흉내가 아니라 근본적인 ‘혁명’을 꿈꾸고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행간에 묻어 있는 그의 생각들은 ‘이상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모두가 꿈을 꾸면 이루어 낼 수 있는 대단히 현실적인 이상들이다. 실현 불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우리 안에 내재된 미래의 모습, 현실속의 가능태로 나타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의 생각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간에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과 방향의 문제를 점검하는 데 일단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겨레에 여전히 칼럼을 쓰며 변함없는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있는 그의 쓴소리는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다. 특정한 목적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목소리도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적당한 거리에서 비춰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책이, 박노자의 눈이 갖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노동자, 농민이라는 대다수 대한민국 사람들의 모습과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소수의 모습까지 두루 점검하고 손길을 내밀어 더불어 함께 걸어가야할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점검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다만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분열되고 이기적인 모습들, 우리 안에 내재된 또 다른 우리의 모습들을 점검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차별과 폭력을 넘어,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은 위정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적 대타협의 서구 유럽의 모델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벗어던져야 할 편견과 익숙해져버린 이기심이다. 쉬운 길을 걸어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을 욕하기는 쉬워도 스스로 길을 만드는 것은 어렵다. 길이 아니라고 우기지 말고 또 다른 길도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박노자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은 아니다. 대학 교수의 직함을 가진 어느새 우리 사회의 주류 資鍍퓸?버린 신분과 다르게 그는 영원히 비판적 시선으로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이야기 할 것이라고 믿는다.

  근본 체제가 되어 버린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문제를 조목조목 짚어내고 반성할 때 ‘당신들’이 아닌 ‘우리들’이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큰 틀과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 더욱 어렵다. 갑론을박하는 현 정치권의 양극화 해소 방안은 기본적인 인식의 틀을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 미래는 ‘당신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050208-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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