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 유학과 서학의 창조적 종합자 e시대의 절대사상 5
금장태 지음 / 살림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완벽한 하나의 사상이 태어났다는 가정은 거짓이다. 기준이 없는, 비교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전해지는 사상이나 제도가 완벽해지는 날은 없을 것이다. 무수히 많은 인간들이 명멸했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도저히 답이 없을 것 같은 지협적인 문제에 목숨걸고 사소한 사건에 생의 전 존재를 거는 무모함 뿐이다. 그것이 삶이다. 모두가 그렇다.

  안개 자욱한 하늘 아래 강진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다산 정약용은 200여년전에 어떤 생각을 하며 바다를 보았을까 생각해본다. 중국의 경서를 꼼꼼하게 해석하는 것을 학문의 근본으로 삼았던 유배지에서의 삶이 어떠했을지 짐작만 간다. 신영복 선생처럼 감옥에 갇혀 있지는 않았지만 두 분이 똑같이 18년이라는 긴 세월을 세상에서 유배당했다. 학문적으로 154권 76책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저서를 남긴 다산은 유학과 서학의 ‘창조적 종합자’라는 부제에 어울린다. 75년이라는 짧지 않은 삶을 살아가면서 사람들과 생에 대한 관점도 생각도 많은 변화를 겪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신유년 벌어진 종교적 탄압이나 지인들의 죽음이라는 트라우마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또 다른 상처와 개인적 고통을 전제로 한다. 남인 시파인 자신의 정치적 배경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천주교의 부당한 측면을 스스로 비판해가며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뇌를 평생 간직했을 것이다. 그의 생애와 사상을 들여다보는 일은 19세기 초 조선 사회의 단면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기예론이나 탐진촌요와 같은 빙산의 일각으로 다산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찌껄이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만나게 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더 간절해지는 이유다. 이 책의 저자 금장태는 다산의 삶과 사상의 핵심과제, 그리고 현재의 유용성에 대해 정리한 후 2부에 다산의 글들을 실어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살림 출판사의 ‘e시대의 절대사상’ 시리즈가 어떤 목적으로 시작되었든 깊이와 넓이를 확보할 수는 없었지만 피상적으로 혹은 장님이 만지던 그것이 코끼리가 확실했다는 증거 정도는 제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다산에 대한 저자의 평가 몇 가지를 살펴 본다.

  정약용은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전통적 사유방식과 제도를 관찰하면서, 곳곳에 배어 있는 불합리하고 비능률적인 사유의 관습과 허위성을 철저히 성찰하여 깨뜨리고 있다. - P. 106

  정약용은 실학적 사유의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상조류를 수용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서양의 과학기술이 지닌 합리성과 효용성의 자연과학적 사유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 P. 107

  정약용의 경학에는 성리학적 해석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물론이요, 양명학 ․ 고증학 ․ 서학의 다양한 이론과 방법의 섭취를 통해 독자적 세계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으로, 실학파 경학의 결정판을 이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P. 112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란 바로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따라서 정약용은 인간 존재의 근원을 하늘로 인식하면서도 인간관계의 사회적 규범인 인륜이 바로 천명(天命)임을 확인하고, 인간 존재의 실현이 바로 인간관계의 사회적 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 P. 118

  그는 “나에게는 소망하는 바가 있다. 온 나라가 양반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온 나라에 양반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여, 차별적 신분제도를 전면적으로 타파하고 인간의 사회적 평등을 확립하는 이상을 자신의 소망으로 밝히고 있다. - P. 129

  학자로서 혹은 한 인간으로서 다산의 면모를 살펴보는 일은 다른 누구와도 마찬가지겠으나 현재적 유용성 때문이다. 책 속에 묻혀버린 수많은 과거의 인물들과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의 반성적 태도를 확인하게 하는 시금석이 된다. 신분제도가 타파되었으나 여전히 계급은 존재하며, 인간 존재의 실현이 사회적 실현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합리와 능률을 중시하고 사유의 관습과 허위성을 깨뜨릴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산의 전 생애를 통해, 특히 유배지에서 보낸 18년 동안 노자의 말을 빌어 “겨울에 시내를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與),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는 뜻의 여유당을 지은 뜻은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 신중하고 경계하는 태도가 현실 정치에 몸담았던 사람으로 실현 가능성을 염두해 둔 자세였는지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 알 수 없으나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다양한 해석과 접근 방식이 아니라 다산의 저작을 직접 읽어 볼 일이다.


060214-02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