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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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단일어가 있고, 서로 기대어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내는 복합어가 있는데 이것은 다시 합성어와 파생어로 나뉜다. 의미가 분명한 어근과 어근이 합쳐지는 단어 형성 방법을 합성어라고 한다. ‘사이시옷’은 이렇게 자기 색깔과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단어의 합성 과정에서 발생하는 음운현상이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독립적 개체다. 서로 기대지 않고 홀로 서는 것도 가능하지만 기대지 않고 혼자 살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이시옷’은 무엇일까? ‘사이시옷’의 역할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사람들은 모르는 것일까? 그래서 이런 책이 필요한 것인가.

  또한 ‘사이시옷’은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한자인 사람 ‘人’자와 닮았다. 상형문자인 한자의 의미는 뚜렷하다. 홀로 설 수 없는 두 사람이 기대 선 모습이라고 한다. 다정하고 행복해 보일수도, 불행의 근원이자 비참한 한계를 드러내 보이는 모습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인간은 홀로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는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2003년에 나온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만화책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나도 수십년만에 만화책을 사 보았다. 만화라는 형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은 다른 장르나 매체보다 강렬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든 만화책이라는 선입견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극명하게 보여 준 수작으로 기억한다. 후속편 격인 ‘사이시옷’도 역시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만화가들 8명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제 지나가던 강아지도 ‘사회 양극화’ 문제를 이야기하는 시점이다. 그만큼 심각하다. 참여정부의 남은 기간을 ‘양극화 해소’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인터뷰 기사는 오히려 현실을 비참하게 한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무심코 책장을 넘기면 눈물을 한 방울 흘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것이다.

  실화를 소재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손문상의 만화가 인상적이다. 장애인과 사교육 문제 등 심각한 현안들을 다루고 있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하면 곤란하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날개를 잘라버린 아이들의 이야기나 마법학교 ‘호구왔다’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해결해야할 문제라기보다 인식과 태도의 문제라고 보아야한다. 나홀로 꿈꾸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되는 세상을 사람들은 꿈꾼다. 하지만 절대로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이기적 경쟁심, 시장과 자본의 논리를 앞세운 자유 경쟁의 원칙을 고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은 쉽지 않은 문제다.

  우리 사회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은 힘이 없거나 결속이 약하다. 목숨을 건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극복할 만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채 시간은 흘러가고 느리고 더딘 형태의 노력들은 지속되고 있으나 현실은 그에 상응하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성을 전제로 한 정부의 정책은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은 한 ‘언발에 오줌누기’식 정책에 그칠 우려가 있다. 개별적 상황과 구체적 사안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전국민이 토론에 나서 몇 만년 걸려도 답이 안나오겠지만 우리 사회가 나갈 방향과 정책 목표가 확실하다면 사실 그리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각론은 다를 수 있고 논쟁도 가능하다. 사회적 합의와 타협은 요원해 보인다. 스웨덴식 사회적 대타협 이야기는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장하준 이야기에 과민 반응하는 정부 경제 부처 각료들의 이상주의로 비쳐지기도 한다. 철학적 이념적 틀이 공고하지 않은 정부 여당의 일관성 없는 태도와 미온적인 정책들이 답답해 보이는 것은 개인적이 과격성 때문인가. 혼자 흥분해서 별 쓸데없는 이야기로 와전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한 두 번째 만화책 ‘사이시옷’은 ‘십시일반’만큼 의미 있는 작업이다. 지하철에 비치해서 온 국민이 멀뚱히 보낼 시간을 때워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옴니버스식 영화 ‘여섯 개의 시선’을 설특집 영화로 방영되어 온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보는 상상을 해 본다. 작은 차이와 조그만 노력들이 얼마나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말해야 아는가. 개별적인 시각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마지막 만화 ‘창窓’은 군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등병과 병장의 시선은 다르다. 수십억, 수백억을 가진 사람들과 전기가 끊겨 촛불을 켜야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다르다. 개인적 노력과 경쟁의 논리를 넘어선자리에 합의점이 있지 않을까? 없으면 말고……


060216-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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