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화의 수수께끼 - 아주 오래된 우리 신화 속 비밀의 문을 여는 30개의 열쇠
조현설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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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은 예술적 상상력의 원천이다. 인류가 이룩해 온 역사와 신화는 이성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의 꿈과 소망, 무의식과 욕망이 뒤섞인 본질적인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화 속에 감추어진 각 민족의 정체성은 민족과 국가를 형성하는 기원과 바탕 틀이 된다. 인류의 예술적 상상력은 여기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민족의 기원과 결속을 다지고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이야기를 공유하는 내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신화는 인류의 과거이며 현재이고 영원한 미래이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성공한 이유는 쉽게 풀어썼기 때문이다. 어렵고 복잡해서 신들의 이름이나 몇 명 외다가 책장을 덮어 버리던 이야기를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로 풀어낸다. 저자의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열정이 숨어 있고 탄탄한 문장과 이해하기 쉬운 문장 구성으로 사람들에게 성큼 다가선 신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후 신화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만화로 출간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상업 출판물이라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제외하더라도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양 중심의 신화가 이토록 열풍을 일으키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야기’ 자체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인간의 본능적 속성에 해당한다. 그것을 말릴 수는 없다.

  조현설의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는 편집의도와 구성면에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오래된 우리 신화 속 비밀의 문을 여는 30개의 열쇠’라는 부제도 그렇거니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그러하다. 표절이나 아류 시비는 아니지만 다른 접근 방식에 대한 고민이 아쉽다. 더구나 우리 신화는 보편성과 지역성이 강해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다. 신화는 민간에서 전승되는 전설과 민담으로 정착되거나 변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내용도 많고 같은 이야기의 다른 결말도 많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화는 건국 신화가 대부분이다. 단군신화를 비롯해서 주몽, 혁거세, 석탈해, 김수로 등 건국과정에서 민족의 자긍심과 우수성을 나타내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달래산’이나 ‘달래내 길’ 등에 얽힌 오누이 설화와 홍수 설화, ‘바리데기’ 설화 등은 신화로 명명되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 책은 우선 우리 민족에게 잠재해 있는 신화소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국가 형성 이전에 민족과 부족 간에 공유했던 변형된 이야기들은 유사성과 차별성을 지닌다. 우리 신화에 잠재된 ‘신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첫 번째 열쇠는 이렇게 주변 민족과 유사 공통체를 이루었던 이민족들의 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변형과 재생을 거듭한 신화는 그 전승과정과 욕망의 과정을 나타내는 적나라한 증거의 역할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최초의 시도이자 훌륭한 아내자의 역할을 한다. 특히, 제주도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 신화의 다양성과 풍부함에 대한 즐거움을 배가 시킨다. 익숙한 신화든 처음 듣는 신화든 논리의 비약과 과장된 결론이 이끌어내는 호기심과 궁금증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과정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저자의 문장을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이윤기의 문장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지만 재미있지 않다. 오랫동안 신화를 연구한 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신뢰성과 차분하고 꼼꼼한 면을 찾을 수는 있지만 신화의 특성인 상상력과 흥미로움의 세계로 안내하지는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대중성과 아카데미즘의 중간에 선 포즈가 어정쩡하다. 아쉬운 대목이다. 좀 더 쉽고 친근하게 할머니의 옛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힐 수 있는 문장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제와 인물을 좀 더 거칠고 단순하게 묶어 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그리고 여러 종류의 신화 관련 서적 중에서 뛰어난 가치와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남는 아쉬움이다.

  통시적, 공시적 관점의 폭넓은 시야와 현대적 의미로 여성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등 신화에서 소홀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지적과 해석도 훌륭하다. 이윤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단순히 한 민족의 신화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유산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훨씬 더 재미있고 다양한 우리 신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권할만?nbsp;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신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종교 윤리가 아니다. 신화는 본질적으로 윤리 이전의 문제, 혹은 윤리 너머에 있는 것을 말하고 싶어한다.”는 면에서 신화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신화의 세계는 “윤리적 인간 뒤에 숨겨진 원초적 충동,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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