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지음 / 책벌레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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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의 조건은 카프카의 말대로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같은 역할을 해야한다고 믿는다. 새로운 깨달음과 각성의 순간을 가져다주는 불같은 열정을 되살린다.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책과는 구별되어야함은 물론이다. 그 깊이와 사유 방식의 넓이에 압도당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개인적으로 2005년 최고의 책 한 권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존 베리의 <사상의 자유의 역사>를 꼽는다. 리뷰에 코멘트가 달려 있는 것을 지금 확인했다. 두 개의 코멘트를 읽어보니 ‘사상의 자유’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한 개인의 인식의 틀은 교육에 의해서,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코멘트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내재된 억압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이데올로기의 편향성. 중립국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논리도 이제는 낡은 유물이 되어 버렸다. ‘이명준’이 ‘타고르호’에서 겪었던 선택과 실존적 갈등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관점과 시선의 차이가 아니라 객관적 정보의 차단과 편향된 교육이 낳은 폐해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고 믿는다.

  출판된 지 5년이 지나도록 이 책을 만나지 못했던 건 게으름과 관심부족, 정보에 뒤떨어졌거나 무식의 소치로 볼 수밖에 없다.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는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필독도서 목록에 반드시 올려 놓아야한다. 좋은 책의 조건은 앞서 얘기했던 것 이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 이외의 것들 속에 이 책의 의미가 숨어 있다. 이 책은 새로운 정보와 죽비 같은 깨달음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서술의 능력의 탁월함을 보여준다. 어렵고 딱딱한 경제사를 사례 중심으로 ‘살아있는 자본주의 역사’로 풀어내는 능력은 순전히 저자의 탁월한 능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21일자 한겨레 1면은 경제 교과서에 대한 여야의 논란이 장식했다. 건설적인 토론과 논쟁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의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교육과정의 탄력적 운용이 가능하다면 이 책을 경제사 기본 교재로 채택하는 운동을 벌이고 싶다. 감정적인 접근 방식이나 절대적 지지만큼 위험한 선택은 없겠지만, 이 책은 그런 위험성을 감안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의 미덕은 객관적이며 논리적인 서술에 있다. 역자가 밝히고 있듯이 ‘우리 나라 일부 대중적 저자들처럼 좌파 사상을 통속화’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상을 짚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사회사적 흐름과 역사적 사건들을 경제의 관점으로 일관성있게 서술하고 있으며 시대를 대표하는 경제학자들의 꼼꼼한 이론 분석을 통해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론적 접근이나 용어들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능력은 아카데미즘에 매몰될 수 있는 경제사를 저널리즘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극찬을 들을 만하다. 용어의 선택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겠지만, 대중성을 확보해야 하는 주제는 깊이와 넓이를 담보하지 못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두 가지 모두 성공한 사례로 손꼽힐 만하다.

  이 책의 출판연도는 1936년 7월이다. 21세기에도 유효하고 생생한 느낌을 받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1929년의 세계 대공황과 나치즘과 파시즘의 폭풍 속에서 이 책을 써 나간 작가의 안목에 감탄할 뿐이다. 특별한 관점과 새로운 각도가 아니다. 깨달음과 새로운 정보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대한 독자들의 고민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역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제대로 읽어내고 있다는 말이다. 구 소련이 붕괴된 21세기에 유효하지 않은 한 장을 번역에서 제외됐다는 것이 아쉽지만 그것이 이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지는 못한다.

  잡다한 상식과 단편적인 경제사에 대한 지식으로 오히려 머리가 복잡한 사람들에게 꼭 맞는 책이다. 시기와 상관없이 만났으니 다행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도 해석하는 방식도 항상 시대에 따라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생성과 발전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중세이후 20세기 초까지의 역사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최고의 책은 아니겠지만 최선의 책이 될 수는 있겠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옹호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외치는 (주)대한민국에서 박노자의 말대로 ‘노동하기 좋은 나라’가 왜 되기 힘든 것인가 하는 대답과 고민이 자본주의 역사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어 버린 지금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가 갖는 의미는 탁월한 경제 학자들의 견해와 미래 학자(?)로 명명된 사람들에 해 다각도로 논의되어 왔고 논의 되고 있다. 이후의 문제 제기는, 즉 ‘자본주의에서 어디로’에 이어지는 문제는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이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다르듯이 책을 쓴다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 책이다.


06022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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