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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열쇠 - 문학,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는 길잡이
김성곤 지음 / 산처럼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 진부한 물음에 대한 답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그 어려움에 관해서만 유사한 것이 아니라 문학의 성격과 본질은 인간의 삶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부터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인간의 삶은 계속되었으며, 문학적 글쓰기도 계속되었다. 문학은 인간이고 삶인 것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형식과 내용은 끊임없이 달라진다. 전시대에 대한 반발과 그 반발에 대한 대안으로 이어진 문예사조는 예술사의 흐름과 더불어 인류의 삶을 들여다보는 만화경과 같다. 그 다종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치열한 생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고민하고 인식하는 모습들이 곧 인류가 걸어온 역사이기 때문이다.
산처럼에서 나온 <사유의 열쇠 - 문학>은 박이문의 ‘철학’편에 버금가는 구성과 내용을 담고 있다. 영문학자의 눈으로 평생 문학을 연구한 연륜과 사유의 깊이가 행간에 묻어난다. 문학 용어 사전이 아니기 때문에 문예사조부터 최근의 현대 문학이론 용어까지 포괄하고 있어 문학사를 일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지루하고 논쟁적인 역사적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6부로 구성된 내용속에 최근의 현대 문학이론을 집중적으로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각각의 개념과 용어에 대한 설명으로 찾아 읽어도 좋을 법한 문학사전이지만 처음부터 전체를 조망하며 읽어나가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포스트 시대의 문예사조들과 패러다임의 변화와 더불어 새롭게 시도된 형태의 다양한 문학 형태를 엿볼 수 있는 것은 한 권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이퍼텍스트에서 테크노 픽션, 크리티 픽션, 그래픽 소설 그리고 판타지 문학에 이르기까지 가장 최근의 등장한 문학 형태에 대한 소개는 정보 차원의 소개로 머무른 것이 아니라 문학이 나아갈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의 역할을 한다. 단순한 이론 설명을 위한 나열이 아니라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내적 질문에 대한 끊임없는 피드백 과정을 거치도록 스스로를 독려하면서 읽어나간다면 책이 주는 내용 이상의 즐거움과 색다른 사유 과정을 거치게 된다.
살아오면서 문학에 대해 단편적으로 축적된 지식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수도 있고, 문학 전공자라면 소홀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아울러 한 번 잘못 기억되거나 오해할 수 있었던 개념들에 대한 간단한 확인과 지식의 점검이 필요하기도 하다. 문학에 대한 이론과 지식, 개념과 용어에 대한 이해가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하는 생각은 소설무용론과 같다. 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과 삶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문학과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우리 인류의 삶을 돌아보라고 충고하는 듯 하다.
책의 마지막 6부는 문학과 신화라는 부제를 달고 ‘신화의 현대적 해석’, ‘헤라클레스’, ‘아라비안 나이트’의 짤막한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있다. 다른 장르와의 관계와 겹침을 확인하고 중첩되는 용어와 개념들을 이야기하자면 한권으로 너무나 부족하다. 양념처럼 들어간 마지막 장은 사족처럼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소홀하게 다루어야 한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흐름에서 볼 때 벗어나 있다. 모든 것을 다룰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면 기본에 충실하도록 다른 장르와 분야에 할애하거나 나머지 장들을 충실하게 보완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더불어 한가지 아쉬운 것은 여전히 서구 유럽과 미국 문학 중심의 문예이론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류와 비주류를 함께 언급하고 참고하고 문학작품의 경우 그 예가 될 수 있는 작품들이 다양하지 못한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또한 우리 문학에 대한 언급과 관계에 대한 설명이 단 한줄도 없다는 것은 더 큰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작은 책 한 권에 욕심을 낼 수 없지만 문학사전이라는 출판 목적에 충실하도록 좀 더 세심한 배려와 내용 설정에 대한 고민도 병행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지니는 의미와 독특한 구성, 내용의 충실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잡다하고 방대한 이론 설명이나 난해한 개념을 더 어려운 용어로 설명하지 않은 점은 이 책이 지니는 가장 큰 장점이다.
이제, 직접 그 작품들을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손도 대보지 못했던, 혹은 아련 기억속에 묻혀 있던 작가와 작품들을 언제든 기회 있을 때마다 만나보는 일은 물론 독자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자 행복이다.
060322-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