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의 라이벌 - 시대와 불화한 천재들을 통해 본 고전문학사의 지평
고미숙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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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 단어 ‘라이벌rival’의 어원은 ‘강river’이다. 같은 강물을 사용하는 건너편 사람들을 이르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농경과 목축을 하던 시대에 강물은 생명과 같은 것이고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아군 아니면 적군이었다. 강을 두고 대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자연법칙을 받아 들이며 살았을 것이다.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삼국시대의 치열한 전쟁은 강의 중요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찍이 고대 인류 문명은 모두 강에서 발원한다. 강을 차지한 자가 역사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이 라이벌이라는 단어는 ‘경쟁관계’를 전제로 한다. 서로 긴장하며 발전하는 긍정적 측면과 오로지 승부에 집착하여 상대를 공격하거나 스스로의 약점을 드러내며 자멸하는 부정적 측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전문학사에서 걸출한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을 통시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라이벌 관계로 묶을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특히 비슷한, 혹은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한국문학사를 관통하는 연속선상의 흐름에서 이해하는 방식보다 이렇게 스타카토로 끊어 읽는 방법은 단편적 사실과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할 수 있어 흥미로운 시도로 보인다.

  인물들이 살았던 시대를 전체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작품에 나타나는 특징을 서로 견주어보는 일은 색다른 방법이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입체적인 방법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인물의 생애와 사상이 투영된 비교문학적 관점은 흥미로운 일이다. <고전문학사의 라이벌>은 삼국시대의 ‘세상과 불화한 두 천재의 갈림길’이라는 부제로 월명사와 최치원을 시작으로 ‘연행예술의 극점을 추구한 두 예술가’ 신재효와 안민영을 비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두 사람씩 묶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배열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김부식과 일연, 이인로와 이규보를 비교하는 일은 당연해 보이면서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관점을 비교하거나 ‘시대의 충돌과 균열’이라는 관점으로 풀어낸 것은 독특하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특히 정도전과 권근의 비교가 극적이다. 조선의 건국과정에서 동지에서 적으로 돌아선 두 사람의 삶과 사상은 흥미롭다. 서거정과 김시습을 비교하거나 김만중과 조성기를 비교하는 내용은 단편적인 내용의 서술과 일관된 관점이 없어 아쉽다. 그 중에서도 ‘유쾌한 노마디즘’으로 박지원을, ‘치열한 앙가주망’으로 정약용을 비교한 고미숙의 글은 가장 돋보인다. 두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문학적 성향의 차이를 정확하고 깊이있게 비교함으로써 동 시대를 살았으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더 안타깝게 만든다. 문장의 탄력과 일관된 설명 방식이 흡인력있게 전개된다.

  정출헌, 고미숙, 조현설, 김풍기 공저로 되어 있으나 고미숙, 조현설, 김풍기는 한 장씩만을 썼고 나머지 여섯 장은 정출헌의 글이다. 책으로 묶이고 보니 전체를 통괄하는 하나의 키워드나 주제가 없고 여러 사람의 공저이다 보니 문체와 문장이 고르지 못한 단점이 있다.

  하지만 색다른 방식으로 고전문학을 이해하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평면적이고 객관적 사실들만 나열한 역사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문학으로서의 역사속 인물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얻게 된다. 우리 고전을 두루 섭렵한 사람이라면 글 읽는 재미가 배가 될 것이고,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고전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하는 책이다.

  텍스트 상호성 측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드러내는 두 작품을 묶어내거나 책 두 권을 묶어보는 일은 나름의 의미가 있지만 자칫 단순한 분류 방법으로 흐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서로 유사한 속성을 묶어내는 지루한 방식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낯설게 묶거나 짐작할 수 없는 다른 방식의 비교 방법이 필요하다. 작품의 비교 뿐만 아니라 작가가 살아온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문학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작품에 투영되었는지 비교하고 분석하는 즐거움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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