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보는 논리 문지푸른책 밝은눈 10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으로 나눈다면 이 책은 필요없는 것일 수도 있다. 많은 책들이 그렇겠지만 현실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 이기적이고 냉소적이고 개인적인 관점 - 불필요한 책이다. 사회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눈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경쟁적, 자본주의적 질서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해가 되는 책이다. 특히 청소년 시기에 겪을 수 있는 가치관의 혼란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안목은 공부에 방해가 되거나 사회적 욕망을 달성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가 반가워하겠는가. 공부에 방해가 되는 어떤 활동도 꺼려하는 것이 현실이다. 학생회 활동, 심지어 반장, 부반장 경력이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상당수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꺼릴 것이다. 게다가 학교내 동아리 활동이나 사회 봉사활동, 사회 참여 활동 등은 대학 진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느냐의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 되어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김찬호의 <사회를 보는 논리>를 읽으라고 권한다면, 논술에 도움이 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대단히 도움이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책의 효용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슬프다. 특히 실용적 목적의 책읽기는 책이 수단과 도구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위험할 수 있다. 책이 신성시되어야 한다거나 높은 교양과 학문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같은 책을 통해서도 목적하는 바가 다를 수 있다는 혼란스런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내 삶의 방향이나 목적을 수정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얻고,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생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인식의 힘을 길러 나가는 도구로서 책은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유 방식을 색다르게, 참신하고 창의력 있는 관점을 가져야겠다는 목적으로 책을 읽는 논술용 교재로 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2001년에 출판된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내용보다 문체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전체 4부의 구성으로 인식 모델의 성찰, 공생과 교류의 관계, 21세기의 사회 구상, 대안적 생활양식의 모색으로 되어 있다. 사회 전반에 관한 폭넓은 관심과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다는 의도가 돋보인다. 무엇보다도 전문 용어나 어렵고 딱딱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서가 아니기 때문에 같이 공감하고 생각해 볼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렇다고 해서 문체가 가볍거나 얄팍한 내용으로 사회적 관심사를 나열하는 책은 아니다. 깊이 있는 주제와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책을 읽어나가면서 더욱 절감한다. 김찬호는 이 부분에서 일정부분 성과를 거뒀고 성공한 듯 보인다. 다만 제한된 분량과 시리즈의 기획의도라는 출판사의 요구에 맞물려 적당한 분량으로 지나치게 다이어트 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조금 더 자세하게 깊이있게 다루었다면 더 좋은 책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람 사이에서 소통되는 언어의 문제, 문화의 문제, 그리고 사회를 바라보는 인식 모델을 성찰하는 일은 나이와 시기에 상관없이 일생을 두고 고민해야 할 문제다. 직업이나 삶의 틀이 형성되기 전인 청소년 시기에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해낼 수 없다는 견해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안적인 삶의 모델들도 살펴보고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고민과 반성,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더 절실하게 필요해지고 있다. 청소년이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기성세대가 먼저 작은 관심과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안다고 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듯이 옳다고 해서 모두 그것을 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논리를 뛰어 넘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면 21세기의 인물로 선정될 것이다. 그 대안이 사회체제이든 국가 형태이든 급격한 변화 과정 속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하게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 허우적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여행을 즐기는 세대들을 위해 작은 나침반과 지침서, 그리고 이 배가 어떤 모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도의 안내는 늘 필요하다. 이 책 한권으로 이 많은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다만 학문적 영역과 울타리 안에서 논의되는 아카데미즘의 견고함과 논술처럼 시류에 편승한 상업적 저널리즘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참된 지식인의 역할이다. 그것들을 선별하고 읽혀야 하는 것 또한 우리들 모두의 몫이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반듯한 사각형 틀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사고 방식과 생활 방식들, 돈이 행복을 보장해 줄 거라 굳게 믿는 스무 살 언저리의 젊은 사들의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혀 주는 역할 할 수 있는 책이다. 꾸준히 팔릴 때는 이유가 있다.


060405-0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