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동엽
김응교 지음, 인병선 유물 보존.공개.고증 / 현암사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엊그제가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지 37년 되는 날이었다. 신동엽의 살아 있다면 일흔 여섯이다. 바보같은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면 구상이나 고은처럼 노년을 맞이했을 동시대 인물이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구상처럼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내기에는 버거웠을까? 1930년에 태어나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신동엽의 시는 여전히 살아 있다. 신동엽이 죽기 바로 전인 1968년에 김수영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이미 간암 판정을 받은 신동엽은 자신의 죽음도 예감하고 있을 것이다.

  시인의 죽음은 영원한 미완성의 시로 남는다. 생전에 그가 남긴 시는 아직도 살아 있다.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종로 5가’, ‘산에 언덕에’ 같은 명편들과 서사시 ‘금강’으로 기억되는 시인 신동엽의 육필 원고를 책을 통해 만났다. 그의 생애를 통해 시를 들여다보는 일은 시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작가론의 의미를 넘는다. 당연하게도 그는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죽음이 신화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이 남긴 글과 생각들이 시대를 담아내는 정제된 언어라면 단순한 삶을 넘어선다. 먼저 인물의 전형성이다. 사법서사(현 법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일제 식민지를 경험했고 문인으로서 평범한 길을 걸었던 신동엽의 직업은 국어교사였다. 전주사범을 거쳐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신동엽의 삶은 어렵고 가난했던 현대사의 격변기를 조용히 대변한다.

  동숭동에 가면 짚풀사 박물관이 있다. 같은 건물에 전국국어교사모임 사무실이 세들어 있어 우연한 기회에 인병선 여사를 만나 뵙고 신동엽에 관한 이야기와 짚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스물 네 살 청년 신동엽이 이화여고 3학년이었던 인병선을 만난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대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인병선은 3학년 때 신동엽과 결혼한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남기고 죽은 남편의 원고 시작 노트들을 고스란히 정리 보관하며 평생 그의 흔적과 그늘 속에서 살아온 인병선의 삶은 어떠했을까. 오히려 신동엽이 행복한 건 아닐까?

  신동엽의 시세계는 완성되지 않은 채 끝나버렸다.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등단해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학 농민 혁명과 갑오개혁, 4․19 정신을 토대로 민중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던 시인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서사시 ‘금강’ 이후 ‘임진강’을 준비하던 중이었던 시인의 나이는 시인으로서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시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시인에 대한 존경을 떠나 현대시의 새로운 흐름이 끊겨버린 느낌이다.
 
  현암사에서 펴낸 <시인 신동엽>은 인병선이 공개한 유물과 고증을 통해 김응교가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는 책을 통해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김응교의 글은 신동엽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면서도 시인의 삶의 궤적을 따라 담담하게 독자들을 안내한다. 흥분하거나 안타까운 목소리를 숨기고 그의 유물과 육필 원고들을 사진으로나마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론 인병선의 꼼꼼한 정리와 보존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제 가족의 보존에 기댈 것이 아니라 문학관의 건립이 필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시인 신동엽을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나 각별한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고 소장해야 할 책이다. 전체가 개나리색 표지에 신동엽이란 글씨로 가득 메운 겉장은 그가 떠난 4월을 기억하는 듯하다. 오랜만에 신동엽 전집을 뒤적이다가 떠나기 1년전인 1968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실린 ‘그 사람에게’가 눈에 들어온다.

그 사람에게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060409-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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