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아나키스트 - 윌리엄 고드윈 수상록
윌리엄 고드윈 지음, 피터 마셜 엮음, 강미경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시인 셸리의 장인 이자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울프턴크래프트의 아버지는 누구일까하는 질문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윌리엄 고드윈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지나간 인물과 사상에 대한 연구와 관심은 시류와 영합하는 측면이 있다. 달리 말하면 사회적 관심과 필요에 따라 주목받는 시대와 사건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런 면에서 아나키즘은 인류 역사에서 특별함을 갖는다. 그 특별함은 주변성에서 확보된다. 주류 역사의 아웃사이더들이었던 아나키즘 신봉자들의 면면이 그러하다. 어쩌면 인물의 주변성이 아니라 사상의 주변성일지도 모른다. 아나키즘은 한 번도 역사의 중심 사상이었던 적이 없기 때문에 여전히 지류로 파악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 최초의 아나키스트로 명명되는 윌리엄 고드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외칠 수밖에 없었던 자유의 사상이 아나키즘이이다. 그 아나키즘을 최초로 주창했던 사람이 바로 윌리엄 고드윈이라고 평가받는다.

  아나키즘이란 일반적으로 국가와 법률에 의한 강제수단을 철폐하고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의와 형제애를 실천하고자 하는 유토피아 운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고드윈의 사상은 철저하고 견고한 사상적 토대와는 거리가 멀다. 철학자도 사회학자도 아닌 고드윈의 생각은 이론적으로 모순적인 부분도 있고, 그 삶 자체도 아이러니 하다. 노년에 국가의 연금을 받으며 생활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그의 사상과 삶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 존경심보다는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고드윈은 그런 면에서 훨씬 인간적이다. 그가 남긴 많은 저작들 속에서 그의 사상의 단면을 짚어 볼 수 있는 글들은 단편적으로 혹은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파악해 보아도 아나키즘의 근원을 조망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생각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것들이 하나의 전범이 되고 수정 보완 되면서 사회는 발전한다고 믿는다. 헤겔의 변증법적 결합은 이 때 필요해진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고드윈의 생각도 근본과 토대를 마련하고 모순과 단점을 수정하면서 끊임없이 국가 권력의 억압과 감시를 받으면서 조금씩 성숙해 온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아나키즘은 무엇보다도 확고한 신념을 지닌 몇몇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발전되어온 정치 이념이나 철학적 풍토가 아니기 때문에 매우 자유롭고 유연한 흐름으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혹은 현실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꿈을 꾼다. 국경없는 사회,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나라, 통일 이후의 한반도, 자동차 없는 세상, 입시없는 학교 생활 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단순히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에 불과한가? 16세기 중엽에 토마스 모어는 ‘유토피아Utopia’에서 그가 꿈꾸던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한 만큼 ’ 가져갈 수 있는 이상 사회를 꿈꾸었다. 공산주의 사회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는 논쟁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그 관계 사이의 기본적인 규칙만이 살아 있는 사회를 꿈꿔본 적이 있다. 물론 ‘유토피아’에는 공무원도 존재하고 공동 농장과 공동 식당 등 고드윈의 생각과는 많은 부분들이 다른 이상 세계를 꿈꾼다. 고드윈은 공동 농장과 식당 같은 토마스 모어식 ‘유토피아’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의 가장 기본적 토대가 되는 자유와 평등, 자치의 개념은 일단 집단과 전체의 조화보다 개인의 행복과 쾌락이 앞선다. 물론 이 사상은 주체적이고 객관적인 정의의 실현에 의해 가능한 사회를 말한다. 국가나 정부의 붕괴가 일시적인 혼란을 가져올 수 있지만 영원한 고통과 족쇄보다 나을 것이라는 고드윈의 생각은 많은 면에서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The anarchist writings william godwin’이라는 제목으로 1986년에 출판된 이 책은 윌리엄 고드윈의 수상록이라 할 만하다. 편집자 서론에서 고드윈의 생애와 사상을 적절하게 해설하고 있으며 본문으로 들어가면 1장에서 아나키즘의 기본 원리로 글을 시작한다. 이어서 인간의 본성과 윤리, 정치, 경제, 교육, 자유로운 사회 등 주제별로 고드윈의 핵심 사상들을 엮어 놓은 것은 순전히 편찬자인 피터 마셜의 능력에 기대고 있다. 고드윈의 책이면서도 연구자의 성과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으로 읽힌다.

  우리나라에서 아나키즘은 단순히 ‘무정부주의’라는 용어로 오역되고 있다. 박홍규 교수의 <아나키즘 이야기>가 가장 정확하게 아나키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크로포트킨이나 바쿠닌의 저작을 찾아 읽는 숙제가 남겨졌지만 고드윈의 영향과 상관성보다도 아나키즘은 영원한 유토피아나 이상 세계에 대한 꿈으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투쟁과 사회 변화의 기초 사상으로서도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정부와 공무원, 국가 력의 강화는 인간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 군림하는 존재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누가 누구를 위해서 기능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한 발 ‘제겨 디딜 곳 없는’ 현실의 토대는 우리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정부와 국가가 스스로 성장하고 권력을 장악하고 독점하면서 법을 앞세워 지금도 여전히 ‘합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새만금이나 미군 기지 이전 등의 사건에서 보듯이, 정부에서 자연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벌주고 싶을 때 꺼내드는 ‘공무집행 방해죄’가 바로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자유와 자연 그리고 자치가 아나키즘의 핵심 사상이라고 요약할 수는 없어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의와 행복이 실현되고 쾌락이 극대화하는 가장 자연스런 삶을 원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고드윈의 사상을 통해 아나키즘의 기원을 살펴 본다기 보다는 , <최초의 아나키스트>로 명명된 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확장되고 전해졌는지, 현재의 유용성은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좀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해답을 찾고 싶은 많은 이야기들이 ‘아나키즘’ 속에 살아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고드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눈을 감고 존 레논의 ‘이매진’을 들어 보라.


06041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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