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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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지凌遲’는 죄인의 살갗이나 살점을 칼로 도려내는 형벌로서, 가능한 한 죄인을 살려둔 채 며칠에 걸쳐 시행함으로써 고통을 극대화하는 형벌이다. 능숙한 집행자는 한 사람에게서 2만 점까지 도려낸다고 한다. 이 끔찍한 형벌은 인간의 폭력과 잔혹함의 극단을 보여준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논하는 것조차 무색케하는 이 형벌은 문명이전의 야만과 광기의 산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물론 이보다 더 다양한 형벌이 많이 존재한다. 삶아죽이기도 하고 궁형에 처하기도 하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잔인한 방법이 동원된 형벌의 역사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론과 설명이 아니라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주는 이미지는 충격이다. 1905년 4월 10일 북경에서 찍힌, ‘백 조각으로 찢겨 죽는 형벌’이라는 제목의 이 사진 속 주인공은 푸추리라는 28세 남자다. 조르쥬 바타이유가 평생 간직했으며 생전의 마지막 저서인 <에로스의 눈물> 마지막 장에 실었다고 한다. 그만큼 충격적이다. 양팔이 이미 잘려 나갔고 칼로 다리 살을 베어내는 장면이다. 가슴 부분의 살갗이 이미 베어져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사진으로 더더욱 놀라운 것은 아직 살아 있고 하늘을 바라보는 눈에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담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에 견주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이다. - P. 166

  인간이 타인의 슬픔이나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은 실로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러난 결국 개인에게 있어 다른 사람의 고통은 자신의 경험을 넘어설 수가 없기 때문에 추정 내지 유추 정도가 될 것이다. 무관심과는 다르다. 도움을 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죽음은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다. 수천명이든 수만명이든 학살과 일방적인 잔혹 행위가 진행되는 과정을 외면했다는 비난과 반성을 외칠 수는 있지만 미디어를 통한 전쟁은 이제 일종의 흥미와 오락거리가 되어 버린다. 94년 걸프전 당신 아침을 먹으며 미국 전투기의 야간 폭격 장면을 마치 오락기의 프로그램처럼 바라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CNN으로 중계됐던 그 장면은 이제 전쟁의 개념도 뒤바꾸어 놓았다. 현대 사회에서 전쟁의 의미와 미디어와 사진을 통한 이미지의 전달은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기나긴 야만의 시간에 대한 반성과 자책은 차치하고서라도 지난 100년전의 역사만 살펴보아도 인간에 대한 믿음은 사라진다. 집단의 광기와 살육만이 존재할 뿐이다. 문명 국가를 건설하고 살아가는 유럽과 미국에 의해 자행되거나 묵인되는 상황들을 돌아보면 대답은 분명해지는 듯하다. 수잔 손택의 말대로 나의 고통이 아니기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2003년에 나온 이 책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사진’을 통해 바라본다. 미국의 비판적 지성인 수잔 손택의 관점은 분명하다. 최근의 전쟁과 그로 인한 고통의 원인과 전달 방식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 한다. 두 차례에 걸친 양차 대전과 이후의 국지전들은 여전히 지속된다. 종군 기자로 참여한 사진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쟁의 참상과 죽음에 대하여 전달받는 타인들, 그리고 그 고통을 해석하는 방식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잔혹함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사진’이라는 은유의 방식은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변화 가능성과 미래에 대한 전망이 아닐까 싶다. 전쟁에 대한 허다한 논의들을 짚어보는 대신 ‘고통’이라는 주제로 ‘나’와 ‘우리’가 아닌 ‘타인’의 고통을 이야기하는방식은 전쟁과 참상을 접근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보인다.

  화가 고야의 ‘더 이상 안돼’라는 제목의 책 표지 그림은 이 책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나무에 목이 매달린 남자를 턱을 고이고 바라보는 사람의 표정이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대중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하다. 나와 상관없다면 그 어떤 것도 아무것도 아닌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처럼 보인다. 책 한 권을 통해 내 삶의 자세와 인류애적 도덕성을 일깨우자는 유아적 발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면 인간이 어차피 사회적 동물이라면 국가든, 민족이든 갈등과 전쟁을 통해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필요는 있다. 무엇보다도 죽음으로 상징되는, 사진이라는 이미지로 전달되는 과정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타인들의 반응은 지금 이후의 세계를 준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내 것이 아닌 모 것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과 내가 겪지 않은 고통들을 통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이기심 그리고 철저한 무관심이 우리 삶의 방식이다. 대부분 그렇게 산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거나 현퓽岵막?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 그것이 사람들의 삶이 방식이 되어 버렸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미지로 ‘재구성된’ 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의 극명한 간극을 보여준다. 그것은 현실의 허구성을 주창하는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 아니다. 현실의 비극적 인식을 철저하고 진지하게 성찰하고자 하는 손택의 현실 인식 방법이다. 나는 우선 그녀가 보여주는 이미지를 통해 먼저 ‘재현된’ 현실부터 확인했다.


060417-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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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시선 <타인의 고통>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8-07 03:49 
    타인의 고통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시울)전반적인 리뷰2007년 8월 5일 읽은 책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처음 안 사실이 지금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의 표지와 지금의 표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뭐 이 책의 발간일이 2004년 1월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책 표지 자체도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림이었기에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약간은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