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것은 축구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감각적인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를 단숨에 읽어버렸다. 체감 재미도 100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 워낙 평소에 축구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도 한 몫 했겠지만,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충분히 ‘재미있게’ 빠져 볼 수 있는 소설을 간만에 만났다. 그 재미라는 것도 단순하거나 뻔한 스토리와 분위기를 몰아가는 통속(?)소설과는 거리를 분명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소설의 재미는 독특한 형식과 참신한 내용에 바탕을 두고 있다.

소설의 의무는 재미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반론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재미없는 소설은 의미만 있을 뿐 소설의 역할을 다시 한 번 고민해 봐야 한다. 재미라는 모호한 말 속에 많은 함의가 들어 있다. 감각적 쾌락과 지적 즐거움을 동시에 가져다 줄 수 있는 탁월한 작품을 우리는 주저없이 명작이라 부른다. 이 소설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을 수는 물론 없다. 하지만 소설이 거둘 수 있는 극단적 재미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김영하와 성석제를 비벼놓은 듯한 감각적인 문장과 키치세대를 떠올리게 하는 스피디한 전개와 직설적인 화법은 그대로 TV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10여개 영화사에서 판권을 사겠다고 덤볐다는 후일담에 고개를 끄덕일만하다. 연애와 결혼 부부와 가족이라는 작은 주제를 순서대로 나열하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생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니 일단 모든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다. 거기다가 2002년 월드컵의 흥분이 가라앉기 전에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기다리는 국민들을 겨냥한(?) 시의성 또한 기막히다. 한 남자의 연애사와 축구 이야기라는 두 개의 축은 소설의 구성을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 각각 따로 국밥이 아니라 하나로 어울어지는 교묘한 합체와 분리가 소설의 흥미를 배가 시킨다. 작가 박현욱이 작가의 말에서 이야기했든 문학이라는 넓은 바다에 이런 소설가가 발끝을 적신다고 해서 큰 누가 되지는 않을 것이며 쓰면 쓸수록 글은 계속 늘 것이라는 믿음이 지켜지길 바란다. 독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소설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미식가가 느끼는 그 즐거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축구 때문에 시작된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모든 만남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다. 물론 작고 사소한 계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만남은 우연이고 그 우연 속에서 서로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연애의 시작이다. 연애와 결혼에 관한 사회사적 고찰과 전 지구적 자료를 뒤적이며 다양한 형태의 결혼 제도와 형태를 소설 속에 녹여내고 있지만 현실에서 용인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현실의 잣대로 소설을 비추어 보는 멍청이가 있다면 당연히 책을 덮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만을 놓고 살펴보아도 일부일처제가 갖는 의미와 역사는 너무 짧다. 주인공 남자의 아내 인아의 말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말 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주인공은 오로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논리와 눈물에 설득 당하고 만다. 아내가 결혼하다니? 누구나 제목을 읽고 나면 전처의 이야기에 관한 소설일 거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작가는 허를 찌른다. 전처가 아니라 아내가 결혼 하겠다고 남편에게 청첩장을 보내오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우습고 혹은 비참한 제도 중의 하나를 끝까지 고수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렇게 지켜내면서 얻어야 하는 그래야만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작가는 근본적으로 인간과 사회, 그 중에서도 결혼 제도의 모순을 한 사내를 통해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풍자나 비판의 목소리가 아니라 솔직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아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재치있는 문장과 유머는 내용의 황당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축구에 관한 많은 자료와 역사는 인류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축구는 특별하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독자들도 이번 기회에 축구와 친해지거나 호기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다.

전통적인 서사구조에서 벗어나 있는 이 소설은 결말이 없다. 물론 궁금하지도 않다. 결말이 별 볼일 없다는 것은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순간순간 상황이 보여주는 선택과 갈등 미묘한 움직임이 아니라 끊임없이 사랑과 연애, 결혼과 부부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되묻고 있는 듯하다. 도대체 인생이 무얼까. 낯설게 바라보는 인간 생활과 귀찮아서 묻어둔 이야기들을 이렇게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 것은 당연히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다. 단 세 명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장편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박현욱은 그걸 해냈다. 대단하다. 긴 말이 필요 없는 책이 가끔 있다. 이 책은 그냥 읽으면 된다. 재밌으니까.


06050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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