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미시령 창비시선 260
고형렬 지음 / 창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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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오십육년간 하루 한끼 하다
절에 비 오는 낮은 궁금했을 것
눈 날리는 날은 더 적적해
친구 없어 몸이라도 굴리고 싶게

이 나라 청화
중이여, 우리에겐 그대가 있군
가장 깊은 곳에서 높은 그대
저 텅 빈 듯한 산중에
지금은 또 누가 삶을 견딜까

그의 창자는 아무리 날이 좋고
마음산 어두워도
하루 한끼만 받고 궁금했던
그대 작은 신발, 만지고 싶다

고형렬의 이번 시집들은 조용하고 잔잔하다. 때로 격렬하게, 혹은 역동적인 몸짓으로 이야기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나지막하다. 산사의 고요함처럼 맑은 정신을 길어 올리는 고즈넉함이 아니라 밋밋하고 특징없는 고요함이다. 울림은 적고 목소리는 낮다. ‘그대’가 누구인지 밝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느닷없는 대상과 목적없는 행위들은 다소 낯선 풍경들을 자아낸다. 앞으로 시집은 직접 보고 골라야겠다. 시인들의 허명 때문에 손해를 입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

네거티브, 검판
김정환 시인에게

이렇게 그리울 줄 알았다면

사진 찍어둘 것을
1980년대 초, 서울 살러 왔을 때
종로 3가에서 을지로 3가 사이
지하철공사장, 거대한 수로처럼 철기둥이 땅속으로
마구 들어가 박힌 대로(大路),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그 붉고 검은 흙들 진창들

흑백으로라도 웃는 둘을 잠시만 세워두었더라면

그 길로 곡예하듯
검판 보러 가던 여름과 겨울이 보고 싶진 않았을 것
기록만 있다면 벌레 먹어도 좋은 것
매미는 울어대고 오공(五共)시대 끝에서 타던 청계천
을지로는 3․1고가로 침침한
눈 펑펑 내리던 그 흑백의 길

내 횡경막 속에 묻힌 역사적인 그 길
지금 그 길, 대화와 수서로 영원한
휴가중, 도둑은 가버리고 늦은 화살만 날고 있는
한낮

그때 서른 무렵이었으니! 너무나 바쁜, 공화국의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차라리 내게는 이런 류의 고요함과 아쉬움이 감각적으로 와 닿는다. 단순한 과거 회상의 시점이 아니라 현재와 대비되는 지나간 시간의 ‘진창들’이 손끝에 전해진다. ‘너무나 바쁜, 공화국의’ 허우적거림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안타깝다. 그 정밀한 풍경 묘사만으로도 나는 한껏 시인의 서른 무렵을 돌아본 느낌이다. 한 편의 시가 전해주는 울림이 무엇일까? 공감할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이 없어도 언어와 감각, 의미와 상상력을 통해 길어 올린 표상들이 공유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치의 눈

하느님이 처음 만들 때 눈빛과
손길이 보인다

잘 접혀진 파란 풀잎
울지 못하는 풀의 울음을 대신한다
나는,
가급적 날지 않으려는 너를 눈으로
들어올린다

하지만 나는
원래의 풀잎에 다시 놓아둔다
울어도 찍히지 않는 울음 때문에

여치,
풀잎 줄기 실뼈의 섬유질 속에
통곡이 파란, 가을을
나는 혼자
눈으로 접고 또 접고 있다

슴벅한 눈길에
스스로 놀라 푸르르 날아가리라

아니면 이렇게 관찰된 대상을 통한 주관적 개입이 바람직하다. 철저한 객관화 아니면 감정의 떨림을 전달받고 싶다. 그 많은 대상과 상황들 속에서 독자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거나 신선한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하지만 안전 운전을 위해, 아름다움과 곱게 포장된 언어를 위해 시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060524-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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