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기적이다 - 현대의 미신에 대한 반박
웬델 베리 지음, 박경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대부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이제는 도시생활이 대부분이다. 농촌에는 60대 노인이 청년 회장을 한다는 말이 사실이 되었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낙후되고 삶의 질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식과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농촌으로 갈 수 있을까? 과학의 시대가 열리면서 가능한 모든 발전들은 우리 삶의 목표가 되었다. 세상은 진보와 발전의 수레바퀴 속에서 영속적인 진화가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인류는 이제 그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맹목적인 과학에 대한 믿음은 인류의 삶에 반성적 태도를 박탈했다. 현대의 미신에 가까운 과학에 대한 맹신은 인간의 가치 판단과 무관하게 발전되어 왔다.

  과학은 결국 가치 판단과는 무관한 기능만을 제공해왔다. 물론, 인문학과 예술과 종교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적절한 가치관을 제공했는가 하는 비판과 반성도 아울러야 한다. 이러한 판단과 논의는 인류에게 영원한 숙제로 남아 있고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웬델 베리의 <삶은 기적이다>는 이러한 논쟁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다. 저자의 생각과 주장은 분명하다. 과학기술의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과 삶의 경이로움에 대한 숭고함이다.

  현대과학의 방법론은 근본적으로 물질주의와 환원주의, 기계론적 사고와 산업주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비판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래서 저자가 택한 방법은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유오성이 선택한 ‘한 놈만 팬다’는 전략이다. 그 한 놈으로 선택된 것이 에드워드 윌슨이다. 최재천과 장대익이 옮긴 <통섭>으로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아 웬델 베리의 의견에 전반적으로 동의하거나 조목조목 반대의견을 비판하며 읽을 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전반적인 그의 견해와 논의의 초점은 특별하지 않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일반론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다.

  윌슨의 통섭은 한자로 ‘統攝’이다. 큰 줄기로 끌어 당긴다는 한자 그대로의 의미보다는 전제주의적 지배적 성격이 강하다. 문제는 통섭의 주체가 과학이라는 데 있다. 웬델 베리가 윌슨에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유도 과학적 환원주의의 입장에서 모든 학문과 인접 분야의 통합을 시도한다는 데 있다. 알 수 없는 세계는 없고 과학으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웬델 베리는 수용하지 못한다. 살아 있음의 신비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은 과학의 잣대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삶은 그 자체로 기적이라는 인식이 기독교적 관점과 일치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 구체적으로 과학적 방법론이 왜 타당한지 조목조목 따져 밝히고 있고 나름의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저자가 내세우는 대안은 없다. 오히려 신비주의와 모호한 태도로 보일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다만 과학적 환원주의에 대한 맹신을 돌아보고 경계해야할 전제임을 반성하는 정도로 읽는다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시도한다는 것은 분명 무리한 시도로 보인다. 그것은 학문간의 교류를 넘어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철학적 문제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단순하게 발전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진보와 발전의 개념과는 다른 문제다. 이 책의 저자가 현대 문명 전반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는 것은 타당해 보인다. 삶의 방향과 목적도 없이 맹목적인 속도전을 치르고 있는 현대인을 위한 반성적 태도를 요구하는 내용으로 받아들인다면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 라이오넬 베스니(1946-1999)의 “우리는 아무 대가 없이 무언가를 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걸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선언적으로 요약하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이 말은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

당신이 보는 대로 세상은 당신에게 현실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보는 당신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
(Blake, Complete Writings, Oxford, 1966, 663쪽) - P. 16


를 인용하며 삶의 예측 가능성과 기계적인 방법론을 철저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이 비판이 비판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아전인수식 해석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성찰적 비판의 대안이 모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종교와 양립할 수 없는 과학의 대립이라는 관점은 아니지만 저자의 태도는 신비주의에 가깝다. 브레이크의 위대한 시가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하다. 많은 책에서 인용되어 식상하기까지 한 이 시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곰곰이 음미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전해 준다. 그래도 ‘삶은 기적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다.

한알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Complete Writings, 431쪽) - P. 168


060525-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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