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당신 문학동네 시집 71
김용택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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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신


잎이 필 때 사랑했네

바람 불 때 사랑했네

물들 때 사랑했네

빈 가지, 언 손으로

사랑을 찾아

추운 허공을 헤맸네

내가 죽을 때까지

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


‘그래서’는 앞뒤의 문장을 인과 관계로 연결할 때 사용하는 접속사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결과가 ‘당신’일 경우 독자는 당혹스럽다. 혹은 그 결과에 대한 원인으로 ‘당신’을 지목한 경우에는 결과에 주목하게 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새 시집 <그래서 당신>의 표제작은 두 어휘의 사소한 부딪힘으로 상상의 힘을 발휘하게 한다. 위 시를 읽고나도 물론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힘들다. 논리적 관계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불거진 의미들은 영원한 사랑에 대한, 혹은 사랑의 고통에 대한 시인의 통찰을 단순하게 상상하기 쉽다. 쉽지 않다는 얘기는 당신과 사랑 사이의 의미다. 지금까지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강가에 서 있는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는 사랑을 곁에 두고 허공을 헤맸다는 이야기인가 하면 영원히 찾지 못하다가 결국 강가에 나무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사랑과 당신의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물론 독자의 몫이다.

또 하나, 이 시의 특징은 한 행이 한 연을 이루고 있는 긴 호흡이다. 한 연에서 다음 연으로 읽어나가는 동안 한 호흡을 가다듬고 한 행을 읽는다. 긴 세월의 흐름이나 오랜 기다림의 시간으로 느껴진다. 시의 형식은 단순히 짧은 문장 구조 뿐만 아니라 내적 깊이와 의미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차분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음미하면서 읽어도 좋고 한줄 한줄 새겨 읽어도 좋겠다.

이렇게 이 시집의 대부분의 시들은 짧은 문장과 절제된 언어로 대상과 감정을 묶어 놓는다. 그 대상이라는 것이 다양하지 않고 선명한 데서 우리는 맑은 물과 같은 감동을 전달 받을 수 있다. 시인의 삶이 곧 시가 된다고해서 시인의 삶을 경의롭게 바라보거나 강가의 초등학교 교사라는 외적 조건이 시의 의미를 규정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만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이 투명하고 정갈한 것만은 분명하다. 거기에는 자연과의 호흡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나무와 바람과 강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흰 종이 위의 먹물이 번지듯이 자연스럽게 배어 있다.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마음들을 읽어내는 능력의 탁월함이 김용택 시의 진경이다.


그리움

바람이 불면

내 가슴속에서는 소리가 납니다


문학 소년, 소녀 시절 한 번씩 연습장에 끄적여 보았을 ‘그리움’에 대한 그 무한한 상상력과 감수성들을 시인은 두 줄로 말한다. 바람이 불면 내 가슴속에서 소리를 내는 자연스러움과 긴 설명이 필요없는 공감대가 그것이다. ‘사랑’이라는 다음 시도 마찬가지다.


사랑

밤길을 달리는데
자동차 불빛 속으로 벌레들이 날아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

필사적이다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벌레들의 맹목적 죽음은 자동차의 속도에 기인한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은 사랑을 부른다. 必死 - 반드시 죽겠다는 말이다. 목적도 없이 왜인줄도 모르고 목숨을 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외치는 벌레의 말없는 죽음들이 인간의 사랑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추상적 관념에 대한 명확한 제시는 의미를 한정시킬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보다 명확하게 시인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표현속에 도드라지는 생각이 낯설고 감각적이다. 하지만 그 감각이 선동적이거나 톤이 높지는 않다. 잔잔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들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이 시집의 장점이다.


화무십일홍

앞산

산벚꽃

다 졌네

화무십일홍, 우리네 삶 또한 저러하지요

저런 줄 알면서 우리들은 이럽니다

다 사람 일이지요

때로는 오래된 산길을 홀로 가는 것 같은 날이 있답니다

보고 잡네요

문득

고개 들어

꽃,

다 졌네


꽃이 다 질 때까지 누군가 문득 보고 싶은 것이다. 삶이다. 권불십호년權不十年이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은 생의 덧없음을 빗대는 흔한 표현이다. 그래서 더 큰 울림을 가져온다. 오래된 산길을 홀로 걷듯이, 누군가 보고 싶은 날들이 있는 있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생은 지고 만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으로 ‘삶’이라는 제목의 시를 겁?없이 네 줄로 마감한다. 하지만 우리들 생이 도달하기 힘든 경지에 서 있다. 이런 모습으로,



내가 가는 길에
눈길 닿을 티끌 하나
겁먹은 삭정이 하나
두지 마라



06060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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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1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 포털 사이트 블로그 안부게시판에 시인 추천 해 달라고 한 1인 들렸다 갑니다.ㅡ,.ㅡ
일단 안도현씨 하고 김용택씨 대표작 부터 쭈욱 한 번 훑어 볼라고욥. (원래는 추천해 주신 분들 시집 중 대표작들 다 사려고 보관까지 해 놨는데, 다른 책들의 유혹 또한 못이겨 그만..ㅡ_ㅡ;;)추천보단 땡쓰2가 더 좋겠죠?!..ㅋㅋ 그런데, 이런....본의 아니게 백수 수준에 걸맞는 보답만 해 드리고 가는 듯...-_-;; 그나저나 이 책 리뷰 중에 힘님 꺼 바로 아래 있는 분의 리뷰도 참 인상적이었다는. 그래서 그 차이에 더 땡겼다죠~~~~^3^ 사진 또한 시라죠.. 시집을 좀 읽고나면 한 때 전공했던 사진도 취미로나마 본격적으로 다시 시작 해 보려고 한답니다. 그래서 시가 땡겼던 듯... 패션디자인과 사진... 둘 중 하나만이라도 잘하자 해서 사진과는 안녕했는데, 그 인연을 완전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나 봅니다. 아~ 문득 힘님은 구름 겹이 드리워진 저 푸른 하늘을 사진에 담으면서 어떤 시상을 탐하려 했을까 라는 생각 또한 감히 해 보고 갑니다. 그럼, 이만. ^_-

sceptic 2008-08-18 21:09   좋아요 0 | URL
반갑네요...^^

사진 전공하셨으면 한 수 배울 기회를...만들어봐야겠는데요...

때로는 사람보다 하늘이 좋아서요...